지난 10일 끝난 제1회 궁중문화축전은 우리 궁의 역사적 가치를 볼 좋은 기회였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그리고 종묘에서 진행된 이번 행사는 각 궁의 이미지에 맞게 행사가 마련되어서 좀 더 깊게 이해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경복궁 흥례문 광장에서 열린 전야제는 정도전이 백성들을 ‘예’로 소통하려 했던 공간이라는 점에 착안해 시민의 참여 속에서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같은 장소에서 밤마다 열린 용비어천가 공연 역시 그 시절 세종의 애민사상을 떠올리기에 충분했으며, 일제에 의해 소실된 소주방 복원은 궁중 문화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조선 궁궐 복원이 외양적인 것을 넘어 생활문화 분야로 넘어왔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야간에도 행사를 진행한 창덕궁과 창경궁은 낭만의 공간이었다. 헌종과 경빈의 사랑 이야기를 음악과 무용으로 보고 들을 수 있었으며, 밤에 창경궁을 걷는 시간은 꿈속의 한 토막처럼 환상적이었다. 횃불 정도 밝기의 조명이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은 그 시절 궁궐 밤 풍경을 상상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종묘에서 진행한 ‘종묘 제례악’ 야간공연은 달 밝은 밤하늘과 어우러져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장엄했다. 왜 유네스코에서 세계무형유산으로 선정했는지 그 가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고종의 궁궐’이라 불리는 덕수궁에서는 ‘대한제국과 가비차’라는 프로그램으로 대한제국시절 유행한 ‘양탕국’(커피)을 시민들이 맛볼 수 있게 했다. 덕수궁은 조선왕조 마지막 역사의 현장이다. 고종은 이곳에서 하루에 양탕국을 10잔 이상 마셨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그 시절, 고종은 덕수궁에서 그 많은 커피를 마시면서 그보다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고종이 덕수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자신을 지켜줄 러시아 공관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탕국 한 잔을 마시면서 잠시나마 고종의 고민을 떠올리는 건 그 어떤 역사 수업보다 값진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축전이 열린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은 흥망성쇠가 모두 다르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은 조선 건국 초에 만들어졌고, 덕수궁은 세조의 손자 월산대군의 저택이 궁궐로 승격됐다. 임진왜란 당시 궁궐이 불탄 이후 왕실 사람들이 기거할 곳이 부족해지자 왕족들의 저택이 궁궐로 승격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조선의 왕족들이 법궁인 경복궁에서 보낸 시간보다 다른 궁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는 사실은 우리의 뼈아픈 역사적 사실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굴곡이 많았던 우리 역사, 우리 궁. 그곳에서 열린 궁중문화축전은 역사적 아픔을 넉넉한 마음으로 승화시킨 멋스러운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잊지 않고 아픔까지 되뇌는 일은 미래를 맞이하는 훌륭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내년, 내후년, 궁중문화축전은 계속된다. 회를 거듭할수록 그 의미는 선명해지고 가치는 높아질 것으로 믿는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