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적 움직임'으로 전하는 인류에 대한 사랑

머니투데이 공영희 소설가 | 2015.05.15 06:13

[공영희의 러시아 이야기]<56>전설적인 천재 발레리노 니진스키


며칠 간 대만에서 시작된 ‘노을’의 영향으로 한국에도 바람이 나무들을 못살게 굴었다. 그다지 큰 비는 아니었으나 남쪽 지방에는 작은 피해를 남기고 나무들은 사정없이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며 큰 몸살을 앓았다.

지난 주에는 러시아 70년 전승기념일이 전파를 타고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이제 러시아의 전승기념일이 러시아의 행사가 아니라 외교의 각축장으로 자리매김 하는 것 같아 힘의 논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살았을 당시에는 러시아 국가의 행사였고 각국의 귀빈들을 손님으로 초청하는 형식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도 힘 있는 나라의 국가 원수들은 항상 앞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사실 기분이 나빴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앞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러시아는 대대적으로 당당하게 자신들의 입지를 이런 행사를 통해 부각하고자 하는 것 같다.

"나는 진실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만년필을 가지고 일체의 진실을 쓰겠다. 나는 산책하면서 그리스도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폴란드인 그리스도교이고 나의 종교는 가톨릭이다. 나는 러시아 말을 하니까 러시아인이다. 내 딸은 러시아 말을 하지 못한다. 전쟁이 나의 삶을 이런 식으로 조정해버렸기 때문이다. 내 어린 딸은 러시아 말로 노래를 부른다. 내가 그 애에게 러시아 말의 노래를 불러주기 때문이다. 나는 러시아 노래들을 사랑한다. 나는 러시아 말의 담화를 사랑한다. 나는 러시아인이 아닌 많은 러시아인들을 알고 있는데 그건 그들이 외국어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인은 러시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안다. 나는 러시아를 사랑한다. 나는 프랑스를 사랑한다. 나는 영국을 사랑한다. 나는 미국을 사랑한다. 나는 스위스를 사랑하고 스페인을 사랑하고 이탈리아를, 일본을, 오스트리아를 사랑한다. 나는 중국을 사랑하고 아프리카를 사랑하며 트란스발을 사랑한다. 나는 만인을 사랑하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신이다." (니진스키의 일기 중에서)

필자가 20세를 전후하여 러시아의 발레리노 니진스키의 일기를 읽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발레를 아주 천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즈음이었다. 육체적인 움직임을 한다는 것을 가장 치욕스럽게 생각하던 치기어린 시절(‘인간은 정신만이 가장 고귀하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갇혀 있었다)이었는데 니진스키의 일기를 읽고 난 후, 나의 정신을 완전히 개벽해버렸다. 그리고 발레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순전히 한 인간의 힘으로 정신세계를 개벽해 버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일까.

니진스키의 일기에서 본 것은 발레라는 육체적인 움직임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 자신의 고통과 철학과 번민, 고뇌였다. 그것은 영혼의 피맺힌 절규였는데 그런 정신으로 춤을 추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발레리노로 기억되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숨 막히는 긴장감과 고통 속에서도 무대 위에서 찬연하게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발레에 대한 사랑과 발레에 대한 의무감과 자신의 영혼에 대한 자존감과 그리고 그가 말했던 인류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던가 싶다.


바츨라프 니진스키는 러시아의 전설적인 남자 발레 무용가다. 1889년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출생했고 1899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황실무용학교에서 공부했다. 졸업하자마자 마린스키 극장에 독무자로 입단해 청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디아길레프 라는 걸출한 기획자를 만나 세계를 재패하게 된다. 특히 1911년부터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불새' '사육제' '세헤라자데' '장미의 정령' '페트루슈카' 등에 출연하면서 “무용의 신"(God of Dance)으로 찬양되기까지 했다.

1912년에는 니진스키가 직접 안무하고 출연한 '목신의 오후'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공이었고 1913년에 발레 미학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봄의 제전'을 안무해 파리를 온통 들끓게 했다. 기존의 발레와는 전혀 다른 안무에 사람들은 혼비백산했고 이것은 아마 현대 무용의 시초가 아니었던가 싶다.

천재는 불행한 것일까, 그의 행보는 오래가지 않았다. 1917년 몬테비데오 적십자 자선공연을 끝으로 스위스의 생 모리츠에 정착하고 정신질환 증세가 심화되면서 이 시기에 '일기'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전전하다가 1950년 런던의 사설 진료소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발레를 통해, 그리고 일기를 통해 자신을 처절하게 부각시켰던 러시아 발레 무용수의 이야기는 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만인을 사랑한다는 무용수 니진스키의 정신은 이미 범우주적인 사상이 아니었을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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