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雜s]'후대 궁핍화 정치' 더 늦기 전에 멈춰라

머니투데이 김준형 부국장 겸 정치부장  | 2015.05.06 06:03

후대에게 부담 지운 연금개혁, 'Beggar-my-child'…청년층 인내심 임계점 올수도

편집자주 | 40대 남자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40대의 다이어리입니다. 몇년 있으면 50雜s로 바뀝니다. 계속 쓸 수 있다면...

어린이날을 맞은 5일 오전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주동물원에서 한 어린이가 행사장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2015.5.5/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여야정치권이 내놓은 논평에 공통으로 들어가 있는 말이다.
권은희 새누리당 대변인은 "어린이들은 국가의 미래이자 희망"이라고 했다.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 역시 "어린이가 행복해야 나라의 미래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청와대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어린이날 기념행사가 열렸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지금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도 (나를 포함해)우리 사회의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해온 일들을 몇년 지나면 눈치 채게 될 것이다.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여야의 대표들은 사흘전 공무원연금개혁안에 서명했다. 낸 돈보다 훨씬 많은 고액의 공무원연금을 이미 받고 있는 사람들의 수령액을 조금이라도 줄이자는 논의는 처음에 잠깐 등장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기수령자들은 5년간 수령금액이 동결되는 선에서 '생색'을 냈다.

재직중인 공무원들은 개혁안이 실행돼도 낸 돈의 2배 이상을 연금으로 받지만 지금 어린이들이 공무원이 돼 은퇴했을 때 받는 연금은 낸 돈의 1.48배로 국민연금과 비슷해진다. '공무원'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공동운명체인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내부에선 이처럼 세대간 이해관계가 명확히 갈린다.

여야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높이는데도 합의했다. 공무원노조가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국민연금을 끌어들이고, '노조=야당표'로 생각하는 야당이 관철시켰다. 여당은 '시한내 타결' 명분을 챙겼다.

야당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려면 현재 월급의 9%를 내는 보험료를 1.01%포인트만 올리면 된다는 보건복지부의 계산을 들이 댄다. 수치상으론 맞다. 2060년까지 연금기금을 완전히 다 써버린다는 전제하에 그렇다.

그 뒤부터는 일하는 사람들이 매년 내는 돈으로 은퇴자들을 부양하는 '부과방식(pay-as-you-go)'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 보험료율은 월급의 4분의1에 달하게 된다. 고령화 추세가 더 급속히 진행되면 젊은층은 말 그대로 '하루 벌어 하루 먹여 살리느라(from hand to other's mouth)'허리가 부러질 지경이 된다.

이미 은퇴한 세대들과 곧 은퇴할 세대들은 낸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국민연금으로 돌려받는다. 가입의무가 없는 사람들까지 '임의가입'할 정도로 국민연금은 매력적이다. 선대에선 '최고의 재테크'이던 국민연금은 후대에는 '최악의 세금'으로 변질된다.

연금은 세대간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나타나는 전쟁터이다. 하지만 연금뿐 아니라 한정된 자원의 배분과 관련된 다른 중요한 정책결정들의 배경에도 기성세대의 이기심이 알게 모르게 작용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하는 주택정책은 싼값으로 젊은 층이 주거를 해결하도록 하는데 초점이 맞춰지기 보다는, 집 값을 떠받치는 쪽에 무게가 더 실리곤 한다.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은 상대적 고령자와 은퇴자들이 대부분이다. 집을 새로 사야 하는 사람은 젊은 층이다. 싼값에 집을 많이 공급하기보다 거꾸로 주택 공급 속도를 '조절'하는 한편, 각종 대출 규제를 풀고 금리를 낮춰 젊은 층으로 하여금 빚내서라도 집을 사라고 권하는 정책은 고령층의 이해관계와 맞아 떨어진다.

기성세대들은 유례없는 경제 성장기에 별 어려움 없이 일자리를 얻고 결혼을 했고, 아이들을 낳았다. 새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후세대들에게 주어지는 비정규직과 인턴 자리로는 결혼도 출산도 남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내년 일자리 관련 예산 13조9748억원 가운데 청년 일자리 및 고용관련 예산은 3.5%인 4933억원에 불과하다.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 당시 29.3%이던 50대이상 유권자 인구는 지난 18대 대선때는 40%가 됐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45.1%로 높아지게 된다. 이들은 정치와 밥그릇의 연관관계를 훨씬 절실하게 알고 있는 적극적 유권자들이다.
19대 국회의원 평균나이 53세(청년비례대표는 고작 여야 각2명)인 입법부의 이해 는 고령유권자들의 그것과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정책을 집행하는 행정부 최고 책임자들 역시 다를 바 없다. 현 정부 들어서는 69세 대통령비서실장(전임은 75세), 76세 국가정보원장 등 권력핵심부의 고령화 추세가 특히 두드러지고 있다.

고향에 사시는 83세 아버님은 얼마 전 함께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다 노인정을 가르키며 이렇게 말하셨다. "매년 지붕을 수리하고, TV 에어콘에, 쌀에...곧 죽을 사람들한테 돈을 너무 많이 쓰는것 같아. 젊은 애들은 먹고 살 돈이 없어 난린데"
고령화 시대에, 우리 사회를 이만큼 일궈온 기성 세대들에 대한 대접과 배려는 당연히 우리 사회의 의무이다. 하지만 '적정' 수준을 넘어 기성세대들이 정치적 약자인 후대들의 몫을 마음대로 당겨다 쓰는 것은 내년 먹을 양식 생각 안하고 씨나락 털어먹는 거나 마찬가지다.

'근린궁핍화정책(Beggar-my-neighbor)'은 자국부터 먹고 살자며 환율 올리고, 임금 낮추고, 관세율높이고, 수출보조금 주는 등 온갖 수단 동원하는 국가적 포퓰리즘 정책이다. 결국은 파트너인 교역상대국의 소득감소, 수출감소, 보복조치를 낳아 나선형 공멸로 가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후대들을 상대로 '후대 궁핍화:Beggar-my-child)' 정치를 하고 있다.

우선 우리부터 살고 보고, 나중일은 니들이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후세대들에게 넘겨줘야 할 카드를 다 빼앗아버리는 후대궁핍화정책은 결국은 사회 전체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고령자 부담에 허리가 휜 후세대들은 소비여력을 잃고 '소득주도 성장'의 주역이 되지 못한 채 비틀거리다 쓰러질 지경이 된다. 어른 부양은 커녕 혼자 설 힘조차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후대들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다다르는 시점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
'붐즈데이(Boomsday)'나 '2030 그들의 전쟁'처럼 노인세대들에 대한 청년들의 집단 반발과 보복을 다룬 책들이 베스트셀러반열에 오르고 있는 것은 그 전조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부채탕감' 등 청년들에 대한 극도의 포퓰리즘 정책을 내건 정당들이 등장해 세를 넓히고 있다.

기성 세대들은 이대로 가다간 밤길에 젊은이들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게 될지 모른다.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최대의 숙제는 노사갈등이나 계층갈등이 아니라 '세대혁명'이다. 어린이날 청계광장 행사장의 동요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그대로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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