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성완종은 의인이 아니다

더벨 박종면 대표 | 2015.04.20 07:14
중국 문화는 용(龍)의 문화다. 중국 고전 ‘주역’에도 용과 관련된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잠룡물용(潛龍勿用) 현룡재전(見龍在田) 비룡재천(飛龍在天) 항룡유회(亢龍有悔) 군룡무수(群龍無首) 등이다. ‘주역’을 쓴 주나라 문왕과 그의 아들 주공은 이들 용어로써 인생을 설명한다. 우리들 삶처럼 용은 변화무상하고 예측불허다.

비룡재천(飛龍在天). 용이 하늘을 난다. ‘대인’을 만나고 하는 일 마다 번창한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학력에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해 1981년 대아건설을, 2003년에는 경남기업을 인수해 매출 2조원대의 그룹으로 키웠다. 국내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로 눈을 돌려 베트남에 여의도 63빌딩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지었고, 러시아 등의 자원개발에도 나섰다.

그는 성공한 기업인에 만족하지 않고 정치인으로 변신해 2012년 4월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충청포럼’을 만들어 반기문 총장 같은 유력 인사들과 가깝게 지냈다. 서산장학재단을 만들어 20년 넘게 300억원 넘는 장학금을 전달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서 ‘비룡재천’은 여기까지였다.

항룡유회(亢龍有悔). 너무 높이 오른 용은 불운하다. 높은 자리에 있지만 외롭다. 성완종 전 회장의 경남기업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9년과 2013년 두 번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해외자원개발사업의 실패는 몰락을 부채질했고, 숙원이었던 베트남 ‘랜드마크72’사업도 분양에 실패했다.

사업뿐 아니라 정치인으로서도 불운했다. 청소년 선도 명분으로 기부한 1000만원이 문제가 돼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2년 뒤 의원직을 상실하고 만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경남기업이 워크아웃에서 벗어나고, 채권은행들로부터 지원을 받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더 큰 시련이 다가왔다. 박근혜정부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해외 자원개발 비리를 수사하면서 경남기업이 타깃이 됐다. 자원개발 관련 비리가 드러나지 않자 검찰은 분식회계와 사기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궁지에 몰린 그는 박근혜정부의 권력자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비자금 폭로와 자살이었다.


군룡무수(群龍無首). 용이 무리지어 있지만 우두머리가 없다. 나서지 않고 절제하니 좋은 일이 생긴다. 객관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지 않으니 두려울 게 없다.

성완종 전 회장은 자신의 실패 이유를 초지일관 외부 탓으로 돌렸다.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45분짜리 육성 녹취록을 보면 이완구 총리가 청와대와 손잡고 반기문 총장과 가까운 자신을 정치적으로 탄압한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중공업도 GS건설도 분식회계를 하는데 왜 경남기업만 문제 삼느냐며 분노한다.

그의 말은 틀렸다. 정치라는 외도를 하지 않고, 건설사 경영자로서 본업에 충실했어도 경남기업이 그렇게 쉽게 무너졌을까. 아무리 건설업이라 해도 어려울 때 마다 정치적 인맥을 활용하기보다 비즈니스 논리로 풀었더라도 지금처럼 됐을까. 100억원이 넘는 회사 돈을 대여금 명목으로 가져가 정치권 등에 뿌리지 않고 내실을 다졌어도 망했을까.

성완종 전 회장은 의인이 아니다. 인맥에 의존하는 낡은 방식으로 기업을 경영하다 실패한 얼치기 기업인이다. 기업가 정신에 투철하기보다 회사 돈을 빼돌려 정치자금으로 쏟아 붓고 무임승차하려 했던 정상배다. 그럼에도 명복을 빈다. 그가 21세기 대한민국 낡은 정치의 희생자임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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