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총리 헌정사상 최단명 '오명'

머니투데이 세종=정혁수 기자 | 2015.04.21 01:34

'부패와의 전면전' 선포했지만 '성완종 리스트'에 취임 63일만에 낙마

이완구 국무총리가 20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고 있다./뉴스1
'성완종 리스트'로 촉발된 핵폭풍이 결국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퇴로 이어졌다. 지난 2월 17일 대한민국 제43대 국무총리 취임한 이 총리는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목숨까지 걸겠다'며 결백을 강조했지만 결국 민심이 악화되면서 63일만에 헌정사상 '최단명 총리'라는 오명을 떠안게 됐다.

정홍원 전 총리의 뒤를 이어 국정운영의 바통을 이어받을 때만 해도 이 총리의 국정운영에 거는 기대는 컸다. 조직장악력과 리더십이 뛰어난 만큼 부처들의 이해를 잘 조정하고 박근혜 정부 3년차의 성과를 도출해 낼 거라는 전망이 많았다.

실제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 총리 내정자를 강하게 비판했던 야당 국회의원들도 "총리가 되면 어쨌든 국정운영은 이전과는 확실히 다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이 총리는 지난 달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면서 강력한 공직기강과 부패척결을 주도했다. 이어 검찰이 MB정권이 추진한 자원외교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면서 '박근혜 정부 vs 이명박 정부'간 갈등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총리가 주도한 부패척결은 부메랑이 돼 총리의 '발등'을 찍었다. 지난 9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면서 남긴 '이완구 총리에게 3000만원을 건넸다'는 녹음 파일이 공개되면서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지에는 허태열(7억)·김기춘(10만불) 등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의 이름과 대선당시 '박근혜 캠프' 핵심 인물들에게 건네진 돈의 액수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이완구 총리의 경우, 이름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완구 총리가 거명된 녹음 파일은 상황을 압도했다. 이 총리가 '성완종 리스트'의 핵심인물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 와중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기 전날 대화를 나눴던 측근들에게 이 총리가 직접 수 차례 전화를 걸어 대화내용을 캐물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이 총리에 대한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이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을 통해 "(성 전 회장으로부터)한 푼도 안 받았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2013년 4월4일 오후 4시30분 이완구 부여 선거사무소를 방문해 3000마원을 현금으로 주고 왔다"는 구체적인 폭로가 이어지면서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비타500 박스에 돈을 담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총리를 패러디한 사진과 동영상이 인터넷상에서 크게 인기를 끄는 현상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패러디 사진에는 음료병을 손에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이 총리의 모습이 담겨 있는가 하면 '한 박스의 활력, 총리도 반한 맛'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무렵 야당에서 제기된 '이 총리 사퇴' 요구는 여당 내 일부 중진의원들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 나갔다. 이 총리가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구체적인 정황에 대한 추가 증언이 나오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특히 "2012년 대선 관여 안했다" "제가 쓰는 전화기는 하나 뿐이다" "성 전 회장과는 특별한 인연이 없다" 등 이 총리의 해명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때 마다 민심은 점점 멀어져 갔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정국을 뒤흔드는 가운데 국정 공백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12일간 중남미 4개국 순방에 나서면서 직무 대행권자인 이 총리가 모든 의혹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식물정부'라는 비판도 거셌다.

총리해임안을 무기로 한 야당의 사퇴압박은 강도를 더해갔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국무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22일 제출할 예정"이라며 "이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이 총리가 먼저 사퇴하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한 식구'로 생각했던 일부 여당의원들마저 야당의 의견에 동조에 나서면서 국면은 점점 악화돼 갔다. 이 총리는 스스로 "대통령의 해외순방 기간중 국정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도록 하겠다"며 공식 일정을 이어갔지만 정치권과 국민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지난 19일 서울 수유동의 국립 4·19혁명 민주묘지에서 열린 '4·19혁명 55주년 기념식'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성완종 리스트' 의혹에 답변한 뒤 첫 외부 공식 일정이었다.

해외순방을 떠난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이 총리가 행정부 수장자격으로 참석했지만,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대표단은 대화도 건네지 않았는 가 하면 문재인 대표 등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이 총리의 도착 전에 자리를 뜨기까지 했다.

갈수록 멀어져 가는 민심과 야당의 총리해임 건의안 제출 등 총리사퇴 압박이 구체화되면서 '목숨을 걸겠다'던 이 총리는 결국 '버티기' 전략을 포기한 채 박근혜 대통령에게 총리직 사퇴의사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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