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경제, 개천에서 용나기 어려운 세태

머니투데이 이철환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전 FIU원장)  | 2015.03.31 09:47

1부. 병든 경제의 여러 모습들<5>

편집자주 | '한국경제는 병들었다'. 30여년간 경제 관료로 일한 이철환 하나금융연구원 연구위원 겸 단국대 교수(전 FIU원장)의 진단이다. 이 전 원장은 "우리의 소득과 생활수준은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지기는 했으나 행복을 느끼는 정도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이유가 과도한 경쟁과 인간의 탐욕에 지쳐있기 때문"이라며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과당경쟁의 지배로부터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제 2의 르네상스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강조했다. 머니투데이는 한국경제의 문제와 대안을 제시하는 '이철환의 병든경제와 행복경제'를 연재한다. 이 전 원장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국고국장,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을 지냈다.

최근 규제개혁이 회자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제 '말로만 규제개혁'이 아니라 실질적인 규제혁파를 통해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 규제개혁의 이야기가 나온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대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내세운 정책방향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별로였다. 이는 아마 그만큼 규제개혁이 어렵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현실 경제에는 수많은 진입장벽이 형성돼 있다. 그 명분은 시장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 환경보호나 미풍양속보호 등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 중에는 불필요하거나 혹은 있어서는 안 될 진입장벽들도 더러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장벽들이 결국 자유로운 경쟁을 제한하고 기득권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바꾸어 말하면 이러한 진입장벽들은 시장의 독과점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수많은 진입장벽 중에서도 자본력에 의한 진입장벽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당연히 자본이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이다. 우선 자본은 자본 자체를 더 크게 확대 재생산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일정한 자본이 있으면 이것을 담보나 기반으로 해 더 큰 자본으로 키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경제에서 경영권을 가진 최대주주의 지분이 10%가 채 안 되는 주식회사가 무수히 많다는 것을 보고 있다. 또한 자본이 있으면 다른 생산요소인 노동과 기술을 보다 쉽게 그리고 보다 우수한 노동력과 기술을 확보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본력의 확보가 대부분 부의 대물림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최대 진입장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자본력이 취약한 사람들은 신용의 기반이 없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조차 하기 힘들게 되어가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우리 경제사회가 자본주의사회이고 신용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현상이 심화되어가고 있다. 이에 많은 젊은이들은 이제는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고 희망이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리고 가진 계층과 못 가진 계층 간 부의 격차가 너무 벌어져 있어, 혼자 힘으로는 이를 극복해 나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절망스러워 하고 있다.


금융생활에서도 이러한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금융회사는 개인에게 대출을 하거나 수수료를 부과하고자 할 때 신용등급기준이란 것을 활용하고 있다. 이는 금융회사가 고객에게 자금을 대출할 때 대출의 규모나 금리수준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 개인의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평가기준은 크게 3가지이다. 연소득과 직업 등을 포함한 신상정보, 자체은행과의 거래내역, 다른 금융회사들과의 거래내역이 그것이다. 금융회사들은 적게는 10개에서 많게는 30개까지 유효성 있는 요소를 종합해 고객의 신용등급을 평가한다. 이를 토대로 각 금융기관들은 개인의 신용등급을 일반적으로 10단계로 구분해 관리한다. 통상 7등급 이하부터는 시중은행권의 대출에는 부적합한 저 신용자로 분류되고 있다. 부득이 이들은 금리가 높은 금융기관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제 이들은 결제 능력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사실상 신용카드까지 발급 받을 수가 없게 되었다.

솔직히 이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기가 어려운 세태가 돼 버렸다. 이는 부모의 배경이 자식의 장래를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모의 권세가 혹은 경제력이 아이들의 장래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는 말이다. 다행히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게 되면 좋은 교육을 받을 수가 있어,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경우 설사 어쩌다 잘 못 풀려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바탕으로 그럭저럭 사업을 꾸려나갈 여지가 있다. 한마디로 본인의 실력이 좀 모자라도 부모의 배경만 탄탄하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좋은 교육을 받기가 어렵다. 이에 따라 그들은 치열한 경쟁과 배려가 부족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로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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