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 향취에 몸 기대고…감향주 한잔에 맘 읊고

머니투데이 영양(경북)=김유경 산업2부 여행레저팀 기자 | 2015.03.26 10:00

[김유경의 한옥 여행]<1>경상북도 영양군 두들마을 '석계종택'

편집자주 | 지방관광과 한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옥체험 숙박시설이 2010년 이후 매년 150여곳씩 증가해 2014년12월 기준 964곳에 이른다. 한국관광공사는 2013년부터 우수 한옥체험숙박시설 인증제인 '한옥스테이'를 도입했다. 관광공사가 선정한 한옥스테이와 명품고택은 총 339곳. 이중에서도 빛나는 한옥스테이를 찾아 한옥여행을 떠나본다.

경북 영양군 두들마을 전경.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91호인 '석계고택'이 정 가운데에 위치해 있고, 오른쪽 옆집이 석계 종손이 현재 살고 있는 석계종택이다./사진=김유경기자
# 안동에서도 차로 1시간20분을 더 들어가야 하는 두메산골, 경상북도 영양군 두들마을에는 한눈에 봐도 수 백 년 된 상수리나무 50여 그루가 뚝방길을 따라 든든하게 버티고 서있다. 수백 년 전 누군가 의도적으로 심었다는 얘기다. 정확히 384년 전, 이 마을이 형성되기도 전의 일이다. 석계 종가음식이 나눔의 선비정신으로 내려오기 시작한 건 그 때부터다.

안동 월령교 야경에 취해 지체했다가 밤늦은 시간에 방문하게 된 두들마을은 고요했다. 하룻밤 묵기로 예약한 한옥은 석계종택(두들마을길 79). 석계 이시명(1590∼1674)의 13대 종손 이돈씨와 종부이자 음식디미방보존회 회장인 조귀분씨가 살고 있는 한옥이다.

고택이라 불편을 각오하고 찾아갔는데 문을 열고 들어간 방 안에는 방 크기만한 욕실이 딸려 있어 깜짝 놀랐다. 한옥 특성상 한 칸을 방으로 만들고 광이나 부엌으로 쓰였을 한 칸을 욕실로 개조한 것이다. 깨끗하고 폭신한 전통 이부자리에서 늦잠을 자고 나니 아침이 개운하다.

석계종택에서는 조식을 제공하지 않지만 숙박객이 아닌 친척이 온 것처럼 아침식사까지 차려줬다. 종가음식을 지켜가는 이들의 일상식이 궁금했는데, 손수 만든 요거트로 버무린 샐러드와 부드러운 나물들, 젓갈, 김, 김치 등이 하나하나 모두 맛있어 그릇을 싹싹 비워나갔다. 점심때 음식디미방체험관에서 맛보게 될 전통음식에 대한 기대치가 커졌다.

그래픽=김지영 디자이너
400년 가까이 된 두들마을의 상수리나무. 도토리는 전쟁후 굶주린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준 '영양군 도토리죽'의 주요 식자재였다. /사진=김유경기자
◇도토리나무 심어 형성된 두들마을 = 두들마을은 1640년 퇴계 이황의 학문을 계승한 석계 이시명이 병자호란의 국치를 부끄럽게 여겨 공직을 사직하고 부인 장계향과 함께 정착한 곳이다. 현재 석계고택 옆 석계종택에서 13대 종손이 살고 있지만 정확히는 넷째아들 이숭일의 후손이 살고 있는 재령이씨 집성촌이다. 석계고택, 석계종택을 비롯해 석천서당, 유우당 등 전통가옥 30여 채가 한눈에 다 들어오는 곳은 정부인장씨 유적비가 세워져있는 원리쉼터다. 장계향이 심은 상수리나무들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장계향은 퇴계의 수제자인 학봉 김성일의 제자 장흥효의 무남독녀다. 19세에 아버지의 제자 이시명에게 시집갔는데 전부인의 아이가 셋이나 되는 재취자리였다. 장계향이 이런 결혼을 받아들인 건 이시명의 집안이 만석꾼의 부자여서가 아니었다. 임진왜란부터 정유재란까지 7년 동안 군량미를 내놓고 난민들을 돌봐줬다는 소문이 영남일대에 파다했기 때문이다. 이시명의 부친인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재산을 나눌 때 상속분을 모두 장남에게 양도하고 두들마을로 온 것도 장계향의 생각이었다. 스스로 일을 해서 축적한 재산이 아니면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

종손 이돈씨는 "장계향 할머니는 군자였고, 성리학의 학문적 본질을 몸소 실천했던 분"이라며 "유산 상속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남을 돕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시아버지를 존경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빈손으로 두들마을로 들어오기 8~9년 전, 1631년에 도토리나무를 심었다. 도토리로 죽을 쑤어 먹으면 굶주려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는데 실제 1636년 병자호란을 겪은 난민들이 장씨의 도토리죽으로 함께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도토리죽은 지금도 그 레시피가 고스란히 전해져 음식디미방체험관에서 맛볼 수 있다. 장계향은 후손을 위해 일흔이 넘어 최초의 한글조리서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을 집필했다.

음식디미방 음식을 재현한 13대 종부 조귀분씨/사진=김유경 기자
◇최초의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에 소개된 '도토리죽'과 '떠먹는 술' = 한국에서 맛기행을 시작한다면 두들마을을 1호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도 한국 종가음식을 처음 소개할 때 석계종택 메뉴를 내놨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 신청한 음식디미방에는 경상도 지방의 음식을 만드는 146가지 요리법이 소개됐다. 조리법은 물론 저장 발효식품, 식품 보관법, 술 빚는 법까지 상세히 기술돼 있다. 음식디미방에 소개된 음식은 급하게 익히지 않고 화학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아 담백하고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특히 양반가에서 먹는 각종 특별한 음식들의 조리법이 나오는데 이는 장계향의 외가에 궁궐에서 음식을 만들었던 나인이 있었기 때문이란 게 이돈씨의 설명이다.

146가지 음식 중 술이 차지하는 비율은 35%나 된다. 이 가운데 으뜸은 떠먹는 술 '감향주'다. 이 술을 빚는데 한 달 이상 걸리고 유통기한은 한 달 정도로 짧아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게 단점이다. 술이지만 향이 좋고 달아 소화제에 가깝다. 체험관에서 음식을 맛보려면 사전예약은 필수다. 가격은 3만~5만 원으로 다른 한정식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체험관을 영양군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어서다. 석계종택에서 로열티를 받을 만도 하지만 오히려 조귀분씨도 다른 사람들처럼 일당을 받고 일하고 있다. 선대 장계향 할머니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전해 내려온 듯하다.


석계 종손이 살고 있는 한옥. 오른쪽 두칸이 석계종택 2호방이다. /사진=김유경기자
◇퇴계 학문이 계승돼온 문향의 고장 '두들마을'= 두들마을은 대학자와 독립운동가가 배출된 마을로 이곳의 기를 받아가도 좋다. 조선시대에는 퇴계 이황의 학문을 계승한 이현일과 이재, 근세에는 의병대장 이현규, 1919년 ‘파리장서사건’에 서명한 독립운동가 이돈호·이명호·이상호, 항일시인 이병각·이병철 등이 두들마을 출신이다.

한국문학 거장으로 불리는 소설가 이문열의 고향이기도 하다. 두들마을에 세워진 이문열 작가의 집필공간인 광산문학연구소와 북카페 ‘두들 책사랑’은 또 다른 명소가 됐다.

두들마을에는 △석계종택을 포함해 △이원박고택(두들마을길 80) △병암고택(두들마을길 100) △백천한옥(원리1길 31) 기와집 4채가 한옥스테이(http://hanok.visitkorea.or.kr)로 지정돼 있다.

☞경북 영양군 두들마을 여행팁

▶한옥 여행 코스 = 음식디미방체험관→석계고택→정부인장씨유적비→음식디미방 전시관→석천서당→석간정사→유우당→여중군자 장계향예절관→광산문학연구소→북카페 두들책사랑→도사고택→주곡고택

▶교통 = 동서울터미널과 진보터미널을 오가는 직행버스가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하루 16회 운행한다. 소요시간은 3시간40분정도. 강남터미널에서 출발할 경우에는 안동터미널에서 하차한 후 진보터미널행 시외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진보터미널에서는 석보행 버스를 타고 석보에서 하차하면 된다. 숙박 예약시 요청하면 진보터미널에서 픽업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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