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연세대의 자세…"현수막 장당 50만원"

모두다인재 이진호 기자 | 2015.03.25 05:10

연세대, 농성 근로자들에 가처분 신청…학생들 "학교 발상 소름끼쳐"

3.8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식에서 연세대 송도 국제캠퍼스 해고노동자가 고용승계를 촉구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연세대가 교내서 농성 중인 송도 캠퍼스 기숙사 노동자들에게 가처분 신청으로 최후 통첩을 보냈다. 학내 자유를 제약하는 무리수라는 지적에 학교 측은 학생들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24일 연세대 및 여성노조 등에 따르면 이 대학 법인은 지난달 26일 서울서부지법에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의 주된 내용은 신촌캠퍼스에서 농성 중인 송도 기숙사 근로자들의 천막과 현수막, 바람개비 등을 철거하고 유인물 배포나 구호를 외치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것. 아울러 천막을 철거하지 않을 경우 1일 100만원, 현수막 부착이나 구호 등 다른 행위들에 대해서는 1회당 50만원을 내라는 것이다.

연세대 송도 기숙사 청소·경비 근로자들 23명은 신촌캠퍼스 본관 앞에 천막을 치고 60일 넘게 농성 중이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31일 용역업체로부터 노동시간을 하루 8시간에서 5.5시간으로 줄이고 월급도 대폭 삭감된 재계약안을 제시 받았다. 이들은 고용조건이 나빠졌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하고 원청자인 연세대에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 학교 본부의 이번 가처분 신청은 장기화된 농성을 마무리 짓고 책임공방에서 빠져 나오겠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연세대는 신청서에서 "피신청인들(기숙사 노동자)들은 ㈜세안텍스(용역업체)와의 고용계약기간이 만료된 상태로, 송도학사 현장을 비롯한 신청인(연세대)의 어떠한 사유지에서도 근로하고 있지 않은 제3자"라며 "신청인은 피신청인들이 주장하는 어떠한 요청에도 응할 의무가 없다"라고 밝혔다. 이어 "학교의 방문객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줘 학생들이 연세대 지원을 꺼리게 돼 궁극적으로 입시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이번 가처분 신청의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학생들은 신청서 내용 중 특히 유인물 살포 및 현수막 부착 1회당 50만원 부과 방침에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연세대 총학생회는 지난 23일 성명을 통해 "학교의 대외적 이미지를 실추시킨 것은 학교 본부 스스로"라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합의한 정치적 자유에 대한 심각한 도발행위"라고 비판했다. 성명에는 50만원을 의미하는 바코드 표기도 삽입됐다. 연세대 로스쿨 공익법학회도 "근로자들의 간절한 부탁이 '급박한 위험'으로만 보이느냐"며 비판 성명을 내놨다.

학교 곳곳에도 학교 측 대처를 비꼬는 모습이 목격된다. 교내 연희관에는 '이 자보는 50만원 짜리입니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등의 대자보가 부착됐다.


자보 작성자인 홍의창씨(연세대 정외 14)는 "벌금으로 사람의 입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 소름 끼친다"며 "제3자라는 표현은 학생들에게 화살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의 가처분 신청서에는 '피신청인들은 제3자로 하여금 위와 같은 행위(구호제창, 유인물 살포 및 현수막 부착 등)를 하게 하여서는 안된다'는 항목이 명시돼 있다.

연세대학교 연희관에 부착된 대자보. /사진=이진호 기자

홍씨는 "이번 가처분 신청서의 가장 심각한 점은 학생들이 겁을 내게 했다는 것"이라며 "진리와 자유를 교훈으로 하는 연세대학교가 자유를 막아 진리를 가리려고 한다"고 일침했다.

이에 대해 연세대 총무처 관계자는 "고용승계 권고를 하긴 했지만 이를 용역업체에 강제할 수는 없다"며 "7차례 퇴거명령을 내렸다. 학교 전체가 피해를 입는 상황에서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법에 호소한 것"이라고 밝히며 노동자들과 학교 본부의 대화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아울러 "학생들은 가처분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제3자는 학생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대자보는 자유롭게 붙여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노동자들의 요청이나 지시로 학생들이 관련 대자보를 붙인 것이 확인될 경우 노동자들이 벌금 징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양동민씨(연세대 경제 14)는 "학교는 정부가 내놓은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을 준수해야 한다"며 "가처분은 가장 가혹한 조치를 실행한 것이며 노동자들의 요청을 받은 대자보를 처벌하겠다는 것은 노동자와 학생들을 분리시키겠다는 뜻으로 읽힌다"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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