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머뭇거리는 당신, 마음을 포갰다면 괜찮다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 2015.03.28 13:34

[MT서재에 놀러왔습니다]'그래야 사람이다'…이웃의 슬픔과 고통을 대하는 자세

저마다 어울리는 자리가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여 종내는 거기에 있는 줄도 모르는, 그대로 풍경이 되는 그런 자리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심지어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도 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학생과 선생은 학교에, 직장인은 직장에, 아이는 ‘부모품’에 있어야 한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있어서는 안 되는 곳에 있으면 고통스럽다. 그 자리에 있어선 안 되는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며 마찬가지로 고통스럽다.

이 책은 용산 참사, 쌍용차 해고사태, 한진중공업 해고사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밀양 송전탑 강행, 세월호 참사, 부당한 공권력, 어이없는 사회지도층 등 시의성 있는 사회 현안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 있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나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국가 폭력, 자본 폭력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상처를 치유해 원래 그들이 있던 ‘엄마품’ 같은 자리로 돌아가 ‘함께 살자’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저자의 말처럼 치유를 통해 일상성을 복원하여 예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내겐 발목을 적시는 불편함에 불과한 물이 누군가에겐 턱밑을 치받는 물이라면 내 불편함 정도는 견뎌주는 게 사람이다. 그래야 내 턱밑까지 물이 찼을 때 누군가 자신의 불편함을 무릅쓰고 나를 구해준다. 그러라고 사람은 함께 사는 것이다.”(55쪽)

상처를 ‘와락’ 안아줄 줄 아는 저자는 결코 강요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거대한 슬픔과 고통의 현장에 함께 있어주기만 해도 위로가 되고, 모르는 척 가만히 있어주기만 해도 힘이 된단다. 폭우처럼 눈물 흘리는 이들 곁에서 어떻게 그들을 도와야 할지 막막하고 무기력할 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바로 그것을 하면 된단다. 그것이 눈물이든 기도든 약간의 핫팩이든. 그러다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잠깐 뒤로 빠져 있다가 다시 오면 된단다. 초지일관해야 자격이 있는 거 아니므로 오랫동안 2진에 있다가 지금 맨 앞에서 몸을 보태고 마음을 포개면 된단다. 그러다가 그들이 지치면 뒤로 물러나 있던 당신이 다시 앞으로 오면 된단다. 그런 순간에 내가 1진으로 나오지 않고 미적거릴까 봐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지금 눈물을 흘리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고 담요를 덮어주고 기도를 하는 모든 이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내용은 세월호 참사다. 차가운 바닷속에 아직도 아홉 명이나 있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아직도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천막농성 중이다. 따지고 보면 다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다. 다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해결된 것이, 치유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갈 수가 없다. 심지어 “지겹다. 이제 그만 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내 자식이, 내 동생이, 내 조카가, 내 선생님이 차가운 물속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냈다고 한번만 생각해 봐 달라”고 말한다. 그게 공감이란다. 그러면 지겨울 수가 없다고, 절대로.

심리기획자인 저자는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의 치유와 저항의 한 방법으로 시인의 마음을 들이민다. 쓰나미급 재앙과 꽃잎의 작은 상처에도 맨 먼저 반응하는 게 시인이기 때문이란다. 시인이 울고 있는 데도 이유를 묻지 않는 사회는 스러질 수밖에 없단다. 시인의 나라가 답이라는 것이다. 시를 쓰지 않아도 시를 읽고 시인의 마음에 볼을 맞대려는 모든 이는 시인이며, 그런 시인이 1,000만 명이면 어떤 경우에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산 ‘치유공간 이웃’에서 동반자 정혜신 정신과의사 및 여러 치유자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 가족들을 만나고 있는 저자에게는 거기가 있어야 할 자리인 셈이다.

◇그래야 사람이다=이명수 지음/유리창/256쪽/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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