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구팽’ 유성룡이 나라를 그르쳤다고?

머니투데이 권경률 칼럼니스트 | 2015.03.14 05:42

[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21. 유성룡 : 왜란을 수습하고 백성을 먹여 살린 명재상

역사는 만화경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바꾼다. 역사인물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징비록’의 주인공 유성룡을 보자. 왜란으로 생사의 기로에 섰던 백성들에게 그는 살 길을 열어준 최고의 명재상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날 무렵 유성룡은 정적들로부터 ‘화친을 주장해 나라를 그르쳤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간신 취급을 받았다. 그의 참모습을 왜곡시킨 것은 바로 붕당의 거울이었다.

퇴계 이황의 애제자인 유성룡은 1566년 스물다섯의 나이로 관직에 나섰다. 그가 활약한 선조 연간은 사림이 중앙정계와 향촌사회를 장악하고 조선의 지배질서를 재편하던 시기였다. 임금은 더 이상 권력의 정점이 아니었다. 신하들의 도는 의리를 따르는 것이지 군주를 따르는 게 아니었다. 사림은 도덕적 권위를 가진 공론을 내세워 군신공치(君臣共治 : 왕과 신하가 함께 통치함)의 시대를 열어나갔다.

그 공론을 형성하고 확산하고 실현하는 몸체가 붕당이다. 조선의 붕당은 정치색과 학맥, 지역기반에 따라 나뉘었다. 선조의 재위 초반에 조정은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졌다. 개혁적인 동인은 이황, 조식, 서경덕의 문하가 많았으며 영남지방을 기반으로 삼았다. 반면 보수적인 서인은 이이의 학통이 주를 이뤘고 기호지방에 뿌리를 뒀다.

동서 갈등은 날이 갈수록 격렬해졌다. 1589년에 터진 정여립 역모사건은 동인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서인의 공세로 목숨을 잃거나 유배에 처해진 동인이 부지기수였다. 2년 후에는 서인 영수 정철이 세자를 세울 것을 주청했다가 선조의 미움을 사서 귀양을 떠났다. 이때 서인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던 동인 일부는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지만 유성룡은 유화적인 스탠스를 취했다. 이 일로 인해 동인은 강경파 북인과 온건파 남인으로 갈리고 말았다.

왜란이 종결될 즈음 남인 영수 유성룡을 몰아붙인 것은 바로 옛 동지이자 집권당인 북인이었다. 그들은 전란 중에 주전론을 외치며 의병활동을 펼쳤다. 파천의 치욕을 씻고 싶은 선조로서는 안성맞춤의 파트너였다. 반대로 국난 극복과정에서 민심을 얻은 유성룡은 왕에게 눈엣가시였다. 토끼사냥을 마치면 사냥개를 삶는 게 권력자다. 북인 영수 이산해와 정인홍은 이런 선조의 의중을 잘 헤아렸던 것 같다.


사실 ‘화친을 주장해 나라를 그르쳤다’는 주장은 유성룡의 실제 행보와 거리가 멀었다. 그는 왜란 직전 이순신과 권율을 장수로 추천한 장본인이었다. 1592년 왜군이 쳐들어오자 선조는 도망치기 바빴다. 그나마 유성룡 덕분에 임금이 요동으로 망명하는 것을 막았다. 몽진하는 와중에도 그는 도체찰사로서 반격을 준비하며 유격전을 독려했다.

국방력을 키우고 민심을 수습하는 일도 영의정 유성룡의 책임이었다. 그는 훈련도감을 설치해 정예병을 양성하고, 진관법을 부활시켜 군사거점을 강화했다. 또 황해도에서 구운 소금을 전라도에서 쌀로 바꾸는가 하면, 압록강 연안에서는 교역을 통해 요동의 곡식을 들여왔다. 그렇게 확보한 식량으로 우리 군사와 백성은 물론 명나라 군대까지 먹여 살렸다. 뜬구름 잡는 공론보다 밥을 숭상한 것이다.

특히 폐단이 컸던 공납 대신 토지면적에 따라 쌀로 받는 작미법을 시행하고, 양반과 천인에게도 군역을 지운 것은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작미법은 원래 서인 이이가 주장한 대공수미법을 손본 것으로 후일 대동법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사노비도 군역을 지도록 하고 공을 세우면 면천과 벼슬을 보장했다. 유성룡은 백성을 위한 시책이라면 당색을 가리지 않았고, 귀천에 차별도 두지 않았다.

유성룡에게 가당치 않은 마타도어가 들어온 건 이 때문이 아닐까. 양반의 특권을 박탈하고 재산인 사노비까지 건드리자 집권당이 나설 수밖에 없었을 터. 이는 ‘양반의 나라’ 조선의 지배질서를 흔드는 행위였다. 1598년 11월 19일 노량에서 이순신이 쓰러지던 날 유성룡도 영의정에서 물러났다. 이후 그는 선조의 거듭된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징비록’을 쓰면서 생을 마감했다. ‘징비록’은 성찰의 기록이다. 사람은 성찰을 통해 편협한 태도를 줄이고 세상을 두루 아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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