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은 혼란과 격동의 시대였던 낭만주의를 대변하는 그림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사디즘마저 연상케 하는 이 작품에서 들라크루아는 붉은 색채와 역동적인 붓 놀림을 통해 인간의 야만성과 잔인함을 표현하고 있다.
한때 자신이 아끼고 사랑했던 모든 것들의 생명을 소멸시키고 만 사르다나팔루스. 적들에게 빼앗기느니 자신이 직접 죽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일까? 가질 수 없다면 모두 죽여서라도 자신의 것으로 남기고자 했던 그의 발상에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 없다.
생활고에 비관한 부모가 아이를 죽인 후 자살을 하고, 변심한 애인을 살해한 후 자살을 하거나 치매에 걸린 아내를 간호하다 지쳐, 혹은 부부싸움 끝에 상대를 살해 후 그 뒤를 따르는 일 등은 이제 뉴스의 흔한 단골 소재가 되어 버렸다. 끊이지 않는 살해와 자살.
사람은 가족이 아니라 그 어떤 경우에도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다른 이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 누군가의 삶을 앗아가는 그런 끔찍한 일은 그 뒤를 따라가는 것으로 결코 용납되지도, 용서되지도 않는다. ‘책임감’이나 ‘사랑’이란 말로 그런 행동을 정당화시킬 수는 더더욱 없다.
<사루다나팔루스>는 그림에서 보는 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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