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오명, 이번에도 못벗나

머니투데이 한정수 기자 | 2015.03.03 06:15
"타이밍 한번 잘 잡았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항소심 선고가 있던 지난달 9일 오후, 기자실 곳곳에서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원 전 원장의 법정 구속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마감을 서두르던 기자들은 갑자기 전해진 또 다른 소식에 불만을 쏟아냈다.

이날 오후 대법원은 자신이 연루된 사건이 잘 처리되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사채업자로부터 수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민호 전 판사에게 정직 1년의 징계를 결정, 발표했다. 모두의 눈이 원 전 원장에게 쏠린 때에 전해진 소식에 기자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최 전 판사에 대한 비난 여론은 매서웠다. 그런데 이 '적절한 타이밍' 덕인지 최 전 판사에 대한 징계 소식은 말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각 언론사들도 간단히 징계 소식을 전할 뿐이었다. 원 전 원장의 유죄 소식을 전하는 게 더 시급했던 탓이었다.

이같은 법원의 '적절한 타이밍' 선택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최 전 판사의 첫 공판준비기일 전날인 지난달 25일, 대법원은 최 전 판사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대법원은 "정직 징계에 불복하면 2주 내에 이의를 제기해 대법원에서 단심재판을 받을 수 있지만 최 전 판사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사직서가 수리됐다"고 설명했다.


절차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현직 판사를 법정에 세우지 않으려는 의도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한 법조계 관계자는 "첫 재판을 앞두고 사직서를 서둘러 처리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최 전 판사는 민간인 신분으로 첫 재판에 참석했다. 최 전 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조용현)의 심리로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인적사항을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공무원이었습니다. 어제자(字)로 퇴직 통보를 받았습니다"라고 답했다.

대법원이 판사들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 식으로 대처했다는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인터넷에 정치적으로 편향된 댓글을 달아 문제가 됐던 한 판사는 사건 직후 사직서를 제출했다. 대법원은 아무런 징계도 없이 이를 수리했다. 2012년에는 법원 여직원을 성추행한 부장판사가 징계 없이 의원면직 처리된 사례도 있었다.

사법부가 중립을 유지하고 정의로운 재판으로 분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은 남녀노소를 불문한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대원칙이다. 최 전 판사가 재판에 넘겨진 만큼 이번에는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의 오명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사법부가 최 전 판사의 재판에서 공정한 잣대로 혐의와 증거들을 가리고 판단해 엄중한 판결을 내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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