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핀테크 메기’를 키운다고? 2002년엔 왜 못 했을까

머니투데이 신혜선 부장 | 2015.02.17 05:37
2001년 10월. 6명의 오프라인 금융전문가가 모였다. 이들이 모인 곳은 자본금 6억7000만원의 A사. 장기·국민은행, 삼성증권, 이니시스, SK 등 오프라인 금융권 및 IT, 대기업 마케터 출신들이다. 이들은 왜 모였을까. A사는 무엇을 하는 회사였을까.

‘핀테크’ 열풍 속에 국내 IT 역사를 대강이라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A사가 국내 최초 인터넷 전문 금융서비스를 표방한 ‘브이뱅크컨설팅’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당시 대표는 현재 밸류아시아캐피탈의 이형승 대표(당시 브이소사이어티 대표 겸직)다.

재벌 2, 3세들과 벤처 1세대들이 모여 만든 브이소사이어티는 인터넷 전문 금융서비스를 핵심 사업으로 내세웠다. 브이소사이어티가 재출자해 만든 ‘브이뱅크컨설팅’은 2002년 2월 금융당국에 무점포 인터넷은행 인가를 요청했다. 모집 자본금은 1000억원 규모. 주주구성 및 지분요건, 서비스를 위한 IT인프라 구축계획 등 사업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했다. 하지만 ‘브이뱅크컨설팅’은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좌초했다.

금융실명제를 토대로 한 ‘은행법’에서는 계좌를 만들 때 무조건 한 번은 은행을 방문하도록 했다. ‘브이뱅크컨설팅’은 “공인인증서를 사용하는 이용자는 이미 검증받았으니 이들에 한해 대면하지 않고 인터넷 가상계좌를 만들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인터넷 전문은행’을 허용하는 제도 개선이 전제였다. 하지만 당시 금융당국은 꿈쩍하지 않았다.

핀테크가 해외에서 밀려온다는 지금, 정부는 위기의식을 감추지 않는다. 금융당국이 나서 기존 금융문화를 뒤흔들 ‘핀테크 메기’를 키우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니 14년 전의 상황을 복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당국이 핀테크산업 활성화를 진짜 원한다면 해결책이 무엇인지 모를 수 없기 때문이다.

현 제도에서 최초 ‘핀테크 메기’는 결코 스스로 태어날 수 없다. 금융실명제 기반의 ‘오프라인 대면확인’과 ‘은산 분리제도’를 어떤 형태로든 개선하지 않는다면 메기는커녕 피라미 한 마리도 나올 수 없다.


만약 그때 ‘브이뱅크컨설팅’을 허가했다면 우리는 알리바바나 페이팔을 부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거꾸로 다른 나라의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열 살쯤 된 ‘메기’ 한 마리를 키우고 있을지 모른다.

물론 단정할 수 없다. 기존 금융사들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선진 IT 기술력으로 무장해 지금보다 경쟁력이 더 좋아졌을 수도 있다. ‘브이뱅크컨설팅’이 지속성장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도전 기회를 놓쳤다는 거다. 이미 10여년 전 기술발전과 시장의 변화 흐름을 파악한 세력이 있었음에도 정책과 제도를 개선하지 않아 실패 경험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국내 금융서비스는 ‘액티브엑스 기반의 공인인증’을 제외하면 사실 어느 다른 국가보다 편리하다. 1000원 단위조차 24시간 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현금서비스도 된다. 성인이 돼 공인인증서를 갖고 있다면 이런저런 조건으로 수수료 한 푼 내지 않고 365일 24시간 금융서비스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새로 등장하는 핀테크업체라고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기존 서비스에 익숙한 이용자를 잡기 위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핀테크 특성상 발생할 수 있는 보안사고 등 새로운 위험요인에 대한 대처방안도 갖춰야 한다.

어찌 보면 핀테크서비스 허용 여부는 단순한 문제다. ‘도전조차 허용하지 않는 꽉 막힌 틀을 부술 것이냐, 말 것이냐’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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