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삶과 수익성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 2015.02.13 10:00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74>

#인문학 열풍이 여전히 뜨겁다. 서점에 가보면 깊이 있고 참신한 내용의 역사, 철학 책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안나 카레니나’ 같은 만만치 않은 분량의 고전 소설은 물론이고 ‘논어’‘맹자’에 플라톤의 ‘국가’ 같은 동서양 경전까지 주요 매대(賣臺)에 진열돼 있다.

이 같은 열기를 반영하듯 한 공중파 방송에선올해 신년 기획으로 유명 심리학 교수의 강의를 3일 연속 저녁 시간대에 방영하는가 하면 국회에서도 지난해부터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인문학 아카데미를 열고 있다.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열기가 좋다.

#그런데 눈을 잠깐만 돌려보면 이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그렇지 않아도 청년 실업이 심각한데 인문계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난은 가히참혹한 수준이라는 것이다.인구론(인문계 졸업생의 90%가 논다)이라는 좀 우울한 신조어가 만들어졌을 정도고,소위 말하는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출신도인문계는 취업이 어렵다고 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지난해 취업통계연보를 보면 인문계열 취업률은 45.9%로 공학계열의 66.9%와 자연계열의 55.6%%보다 훨씬 낮았다.

그러다 보니 대학들은 자발적으로 기업식 구조조정에 나서 취업률이 떨어지는 인문계 비인기 학과들을 통폐합하고 입학정원도 줄이고 있다. 심지어 대학 총장이 직접 기업 현장을 방문해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키우는 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취업난 하면 기업에서 으레 하는 말이 “대학 교육이 현장과 너무 괴리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학이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을 가르치지 않아 신입사원을 재교육시키는 데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고 지적한다.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대학이 직업교육 기관이 아니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적어도 한두 달은 연수원에서 기본적인 실무 지식을 가르치고 부서 배치 후에도 6개월 정도는 선배로부터 현업과 관련된 노하우를 배우도록 해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럴 여유가 없어졌다.무엇보다 성과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그것도 장기적인 성과가 아니라 바로 나타나는 단기적인 성과다. 해마다 수천억 원씩 흑자를 내는 기업이 더 나은 실적을 위해 엄청난 감원을 단행한다든가,입사한 지 10년밖에 안 된 과장급 직원까지 구조조정 대상으로 내몰리는 것도 결국은 단기적인 성과주의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는 단기적인 성과에 도움이 되는 “준비된” 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무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고, 비용 대비 수익 측면에서 소위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 전공자보다 월등히 뛰어난 상경계와이공계전공자를 뽑는 것이다. 그것도 가능하면 일류대 출신의 성적 좋은 졸업생들을 말이다.

우울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살벌한 글로벌 시장에서 수익성을 무시했다가는 기업이 생존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눈을 다시 한번 돌려보자. 기업들마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창의적인 인재를 원한다고입에 발린 듯이 얘기한다.한데 이런 인재는 시험으로 뽑을 수 없다. 우리가 보는 시험은 한마디로 ‘분석력’을 테스트하는 것이다.분석력 문제는 남들이 낸 문제를 푸는 것이다.학교 시험처럼 정의가 분명하고,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가 주어지며, 정답이 하나뿐이다. 반면 창의력 문제는자기가 낸 문제를 자기가 푸는 것이다.명확한 정의도 없고, 주어진 정보도 충분하지 않으며, 정답도 여러 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시험 문제는 없다.

인문학적 소양도 마찬가지다. 인문학은 인간을 배우는 학문이라고 하지만 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여기에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 전공자가 취업하기 힘든 건어쩌면 정상이다.물론이런 물음은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수익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의 삶도 과연 가치 있는 것인가?” 대학에서는 당연히 그렇다고 가르칠 것이다.우리 인간의 삶은 수익성과 상관없이 가치 있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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