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 있어 지원 못 받는 90대 노인, 누가 돌보나 했더니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 2015.02.14 05:59

[쿨머니, 이웃집 산타]틈새가정 찾아 돕는 홍은동 주민들 이야기

방경희 홍은동 자원봉사센터장(맨 왼쪽)과 정제호 홍은동주민센터 주무관(가운데)이 한 독거노인 댁을 방문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이경숙 기자


폐지 주우며 혼자 사는 90대 할머니가 있다. 아들과 딸은 있지만 생활비는 주지 않는다. 가족이 있으니 정부 지원을 받을 수도 없다. 대신 이웃이 할머니를 함께 돌본다. 공과금이 밀리면 이웃들은 모아둔 성금으로 긴급 지원한다. 매일 점심, 도시락을 들고 “안녕하세요”하며 문을 여는 이웃도 있다.

복지 사각지대, 소위 ‘틈새가정’의 이웃을 함께 돌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주민들과 주민센터 직원들이다. 이들은 “다른 동네에도 이런 사람들 다 있다”며 “이게 기삿거리가 되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송파구에선 만성질환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자살했다. 복지사각지대의 안전망을 강화하는 소위 ‘송파 세 모녀법’이 지난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이달 7일엔 정부 지원금 50만 원 중 30여만 원을 병원비로 내던 70대 노인이 단칸방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복지엔 돈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사회복지 전달체계’다. 이 전달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 않으면 돈이나 자원이 있어도 필요한 곳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반대로 잘 갖춰져 있으면 예산이 부족해도 복지가 늘어난다. 증세에 기대지 않는 복지가 생긴다. 홍은동이 한 사례다. 그 현장에 갔다.

◇민간기부, 봉사 주민센터 통해 전달

홍은동 자원봉사센터의 방경희 센터장이 한 틈새가정을 방문하고 있다.
홍은동의 한 골목. 녹슨 우편함 옆 회색 철문을 여니 집이 있다. 건물 틈새에 지은 것 마냥 좁고 긴 집이다. 홍은동 자원봉사센터 방경희 센터장과 주민센터의 정제호 주무관은 스스럼없이 신을 벗고 들어간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요새는 나와 계시질 않네요.”

정 주무관이 말을 붙이자 장복례 씨(92, 가명)는 “잘 안 들린다”며 몇번 되묻더니 “머리 허얘서 어딜 나가 앉아 있느냐”고 하며 앞니가 없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웃는다. 정 주무관은 취재수첩에 ‘보청기’라고 적는다. 방 센터장은 방바닥에 뒹구는 공과금 고지서를 내 집 것인 양 익숙하게 펼쳐본다. 공과금이 밀렸나 확인하는 것이다.

장 씨의 한달 소득은 기초연금 20만 원과 폐지를 팔아 얻는 몇천 원이 전부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받지는 못했다. 따로 사는 아들과 딸한테 소득이 있기 때문이다.

홍은동 주민센터는 주민들의 기부금을 모아 장 할머니처럼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가구에 긴급생활비나 장기체납된 공과금을 지원한다. 이웃돕기성금은 2월초 3700만 원이 모였다. 80여 명의 주민이 적게는 2000원, 많게는 800만 원을 기부했다. 이 돈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주민들한테 동 사회복지협의체를 통해 배분될 예정이다. 행정서비스의 전달체계인 주민센터가 주민의 기부와 봉사를 위한 전달체계로도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지원 대상은 방 센터장 등 15명의 자원봉사자로부터 추천 받거나 동사무소 직원들이 직접 발굴한다. 정 주무관은 길가에서 서성대는 장년의 남자를 따라갔다가 그가 장애로 일거리를 잃고 폐가에 무단으로 들어가 사는 것을 봤다. 그는 지금 주민들의 기부금으로 거처를 마련하고 자활근로교육을 받고 있다.

그의 정보망은 기자 못지않다. 지난해 가을엔 여관에서 홀로 지내다 병원에 실려간 노인에 대한 제보를 받고는 연락이 끊겼던 가족을 찾아줬다. 가세가 기운 후 돈 벌어오겠다고 나갔던 아버지를 30년만에 만난 가족은 반갑게 그를 맞이 했다.


지난해 처음 홍은동 복지 업무를 맡게 됐다는 그는 “방 회장님처럼 오랫동안 동네에서 봉사한 분들이 안 계셨다면 장 할머니 같은 틈새가정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며 “담당 공무원이 2~3년마다 바뀌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 외엔 어려운 주민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고 말했다.

홍은동주민센터 내부./사진=이경숙 기자


◇23년 봉사한 ‘방 회장님’, 11년째 기부한 ‘이 사장님’

‘회장님’으로 통하는 방 센터장의 직업은 요양보호사다. 아이들 학교에서 어머니교실회장을 맡았다가 1992년 홍은동부녀회장이 된 후부터 이 동네에선 ‘회장님’이 됐다. 방 센터장은 매일 틈새가정에 점심을 배달한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엔 6개 가정을 돌본다.

지난주 그는 자원봉사자 5명을 모아 70대 독거노인의 집을 청소했다. 100미리리터짜리 종량제봉투로 10개 분량의 쓰레기가 나왔다. 냉골에 사는 노인 댁엔 개인돈으로 전기장판을 사다뒀다. 대부분의 일과를 봉사로 보내는 부인에 대해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남편 이만규 씨는 별말 없단다. 남편 역시 동네 어린이를 돕는 봉사대원이다.

이 동네 틈새가정에 가장 큰 후원금을 낸 이는 이진민 대표와 아이소이화장품이다. 홍은성결교회 신자인 이 대표는 2004년 무렵 교회 바자에 참여했다가 ‘틈새가정’의 존재를 알게 됐다. 개인적으로 후원을 시작했던 그는 회사 차원의 사회공헌도 끌어냈다. 아이소이는 홍은동 틈새가정 외에도 서해안복원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직원들이 저소득층 아동과 결연하면 회사도 함께 기부하는 ‘1:1 매칭그랜트’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아이소이화장품 임직원들. 맨 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이진민 대표.


◇'인사 나누기' 동네 복지의 시작

이 대표는 “마음을 먹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명절 때라든가 계기가 있을 때마다 기부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정확히 언제부터, 얼마를 후원하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면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다”며 “거창한 게 아니라도 도울 수 있을 때 바로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 센터장은 “50~60년 전 초등학교 시절에 봉사부장을 맡았는데 그 후로 그냥 계속 봉사를 하고 살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 등하굣길에 물을 준 코스모스가 무성하게 자라 아름다운 길이 됐던 일을 첫번째 봉사로 기억했다. 그는 “길 가다 인사만 할 수 있어도 자원봉사 기질이 있는 것”이라며 “혼자 서 리어카(손수레) 미는 할아버지 뒤에서 그걸 함께 밀어줄 수만 있어도 나눌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나눔에 큰 결심이나 용기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인사를 나누는 일도 나눔의 시작이다. 강재홍 홍은동장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라”며 “그러다 힘든 분을 알게 되면 행정기관에 안내해달라”고 말했다. 그것도 수줍다면 동네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주민센터에 기부금을 맡겨도 된다. 주민센터들은 비영리단체를 통해 기부금 처리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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