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좇는 오늘, 내일은 없다? '복고', 반갑고도 위험한 경계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5.02.11 05:56

'써니'부터 '쎄시봉'까지 장기전 돌입하는 '복고 열풍'…소재 고갈·창작 부담에 떠밀린 '안일함' 비판도

영화 '써니'.
‘복고 열풍’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복고’에 기댄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기도 드물다. 정보기술(IT)은 하루가 멀다 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문화 콘텐츠는 자고 나면 타임머신을 탄 듯 과거로 돌아간 모양새다.

‘복고’에 대한 향수는 대부분 일회성으로 휘발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지금의 ‘복고’는 뉴 콘텐츠로 인식될 만큼 장기적으로 순환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복고가 한 번의 재미, 추억의 소구를 넘어 콘텐츠 시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영화 ‘써니’(2011)로 촉발된 복고 열풍은 지금까지 수많은 복고 아이템을 양산하며 순항중이다. 기성세대에겐 추억과 향수를, 신세대에겐 새로운 콘텐츠로 다가서는 복고 문화상품은 그러나 우리 시대의 새로운 창조 콘텐츠를 가로막는다는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복고는 기성세대의 향수를 상품화하려는 기획사의 노련한 전술일 뿐”이라며 “실험소각장 같은 복고에 기대는 한, 문화의 질과 업그레이드는 꿈꿀 수 없다”고 강조했다.

◇ ‘너도 나도 복고’…‘90년대’ ‘장기화’ ‘현재성’ 3가지 특징

영화 '국제시장'.
영화 ‘써니’ 이후 ‘복고’는 5년째 순항 아이템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써니' 이후 ‘건축학 개론’으로 영향력을 과시했고, 올해 ‘국제시장’을 필두로 ‘강남 1970’ ‘허삼관’ ‘쎄시봉’ 등 과거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이 사이 방송에서는 ‘응답하라 1997’ 등 90년대 이야기가 큰 호응을 얻었고, 최근에는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라는 90년대 가수들을 다시 모으는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나는 가수다’ 시리즈와 ‘슈퍼스타K’ 시리즈, ‘불후의 명곡’ 등 오디션 프로그램도 엄밀히 말해, 주로 옛날 노래를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복고의 연장선상에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의 복고 열풍이 가장 많이 신세를 지는 시대는 90년대다. 영화 ‘친구’가 80년대 사회분위기로 돌아가 기성세대의 추억을 건드린 이후, 복고의 주무대는 90년대가 차지했다. 실제로 ‘90년대 아이템’으로 승부한 예능과 드라마, 영화들이 대부분 승승장구했다.

90년대의 힘은 소위 ‘컬처 쇼크’(Culture Shock)로 요약된다. 민주화 등 정치적 움직임이 강했던 80년대 세대들에겐 자신들을 소환하는 문화가 시대정신이 될 수 있지만, 90년대 세대들에겐 대중문화가 그들 기억의 전부일 수 있다는 것.

70년대 청바지와 통기타로 대변되는 문화가 기성세대와 구별되는 정체성의 상징이듯, 90년대 대중문화는 민주화 등으로 상징되는 기성세대와 또다른 변곡점을 찍는 상징의 첫 걸음이라는 뜻이다. 서태지의 출현은 ‘컬처 쇼크’의 시작인 셈.

영화 '쎄시봉'.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90년대 청년문화는 전쟁의 그늘도,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도 없는, 대중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던 첫 소비세대”라며 “시간이 지나도 90년대 추억을 꺼내는 일이 부끄럽거나 식상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70년대는 쎄시봉이, 90년대는 서태지가 각각 문화 혁명을 일으킨 것도 현재진행형 아이템으로 계속 써먹을 수 있는 요인이다. 복고를 일회성으로 만들기위해선 그 복고가 지닌 힘이 다른 문화 충격으로 전복돼야하는데, 2000년 이후 그 변화(슈퍼스타의 등장 등)는 일어나지 않았다. 미미한 변화는 많았으나, ‘충격’이 적었다는 점에서 90년대 문화는 의외의 ‘현재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황진미 평론가는 “90년대 문화를 딛고 일어설 무언가가 나와줘야 과거 문화를 외면할 수 있는데, 지금 젊은 세대들은 그 시대 문화를 별 부담없이 받아들일 만큼 세련되게 인식한다”며 “새로운 문화 충격이 나타나지 않는 한 복고문화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 ‘마니아 문화’ 생략된 ‘의도적 복고’…창작 의욕 저하 요인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복고 문화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아이디어가 빛나는 창작 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전반적으로 볼 때, 어떤 마니아 문화 자체가 붕괴되고 있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며 “새로운 것은 절대 시간이 필요하고, 때론 마이너 또는 마니아에서 성숙해가는 단계가 요구되는데, 지금은 모두 그 단계 자체를 생략해버린 꼴”이라고 설명했다.

콘텐츠없이 시장의 입맛에 맞게 복고라는 단물을 빼먹는 행태는 ‘의도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황진미 평론가는 “방송이라는 막강한 전파의 힘을 이용해 추억의 가수들 불러 복고를 양산해내는 건 시청률을 위해 다분히 계산된 행동”이라며 “결국 있는 곶감 하나씩 빼먹겠다는 심산”이라고 했다.

복고가 장르나 스타일을 차용해 새로운 콘텐츠와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적 수익을 위한 모델로써 우려먹는 수준으로 그쳤다는 비평도 있다. 복고를 주도하는 것이 음반회사나 공연기획사가 아닌 방송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김헌식 평론가는 “복고 열풍이라고 떠들어대도 실제 팬들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방송 등 언론에서 과잉해석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며 “그건 창작의 의미를 곁들인 진정한 의미의 복고가 아니라 리메이크 수준에 머물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국제시장’이 성공한 것은 시대의 우울함속에도 특정 세대의 관념이나 답습적인 코드들을 쉽게 남발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다른 대부분의 작품들에선 ‘상업성’에 맞춘 복고 코드들이 수시로 튀어나온다”고 했다.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작품은 시도와 실험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이미 존재하는 것을 편집하고 재해석하는 수준에선 문화의 발전이나 진보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복고는 기성세대의 감수성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며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 자체를 존경하고 인정하지만, 소재 고갈과 창작에 대한 부담을 복고에 전가시키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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