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빵 뺑소니' 네티즌 댓글이 결정적?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 2015.02.01 07:49

[취재여담]"댓글제보 사실 아냐"…네티즌·경찰 대결구도보단 충분한 예산·인력 중요

지난 10일 발생한 이른바 청주 '크림빵 뺑소니' 사건 용의차량으로 추정되는 BMW 차량이 찍힌 CCTV 화면. 결국 가해차량은 '윈스톰'으로 밝혀졌다. /사진=KBS 방송화면 캡처
"'크림빵 뺑소니' 용의차량 BMW 아닌 윈스톰(1보)"

지난 29일 오후 5시30분쯤 뉴스를 통해 전해진 경찰 브리핑 속보에 많은 이들은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부연설명 없는 한줄 속보에 일부는 '역시 네티즌 수사대의 수사는 믿을 게 못 된다'며 성급한 자조를 쏟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애초에 엉뚱한 CCTV 화면 속 차량을 용의차량으로 지목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하는 등 시간낭비 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다시 질타는 경찰로 향했습니다.

'윈스톰' 속보 이후 사건처리는 일사천리였습니다. 같은 날 밤 8시50분쯤 "'크림빵 뺑소니' 사건 유력 용의자 자수'"라는 속보가 떴습니다. 용의자의 아내가 남편을 신고한 것이었죠. 경찰은 잠적한 용의자를 설득하며 추격했고 결국 그날 밤 11시쯤 허모씨(38)의 자수를 받아냈습니다. 사건 발생 19일만입니다.

피의자를 잡았지만 경찰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비난을 받는 모양새입니다. '크림빵 뺑소니' 사건은 무엇보다 '네티즌 수사대'의 저력을 만천하에 드러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습니다. 네티즌 수사대의 활약은 곧 '경찰의 무능'처럼 비춰졌고 수사기간 내내 공권력은 네티즌과 대결구도를 이루며 비난을 받았습니다. 특히나 수사에 급진전을 불러온 '윈스톰' 차량이 찍힌 CCTV 확보에 네티즌의 '댓글' 제보가 결정적이었다는 식의 소문이 퍼지며 '경찰은 대체 뭘 했냐'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경찰은 정말 이번 사건 수사에서 한 게 없을까요?

경찰이 실제 용의차량을 윈스톰으로 특정한 건 언론에 알려진 29일 이틀 전인 27일입니다. 27일 수사본부가 차려진 당일 새로 투입된 강력팀 형사들이 재수사 차원에서 현장을 재방문해 주변을 수색하다 발견한 것입니다. 사고지점 170m에 위치한 차량등록사업소 외벽 코너에 설치된 이 CCTV는 초기에 교통경찰관이 이미 확인했던 것인데 건물 내부만 촬영되는 줄 알았다가 외부도 촬영된다는 걸 새로 알게 된 겁니다.

경찰은 이 새로운 CCTV 영상을 판독해 27일 자체적으로 용의차량을 윈스톰으로 수정했지만 일단 공표하지 않고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경찰은 28일부터 GM부품대리점을 탐문하기 시작해 결국 천안의 한 부품대리점에서 윈스톰 차량의 부품이 출고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29일 오후 경찰이 부품 결제에 사용된 피의자 허씨의 친구 신용카드 추적에 들어가자 허씨는 수사망이 좁혀지는 것을 인지하고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은 더 이상 애꿎은 BMW 차량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고자 29일 저녁 5시 브리핑에서 '윈스톰'을 용의차량으로 발표했고, 이를 본 용의자의 아내가 남편을 신고하게 된 것이죠.


경찰은 이번 수사에서 네티즌의 도움이 컸음을 인정하면서도 일부 언론에 언급되고 있는 '댓글 제보'설은 사실이 아니라며 억울해 했습니다. 김성백 청주 흥덕경찰서 교통경비과장은 "새로운 CCTV는 27일 우리 강력팀이 현장에서 발품을 팔아 찾아낸 건데 억울한 측면이 있다"며 "대체 그 문제의 댓글이 뭘까 궁금해 찾아봤는데 한 포털 뉴스 댓글에 차량등록소 직원이 단 댓글이 있더라. 그걸 보고 간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보배드림'에 올라온 "'크림빵 뺑소니' 용의자가 저희 사무실에서 부품을 사갔다"는 글을 근거로 부품대리점 추적마저 네티즌 제보에 의존한 것처럼 잘못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CCTV 댓글'이나 이 글이 인터넷상에 게시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경찰 수사보다 시간상 앞선 것인지 등 전후관계는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딘가에서 먼저 쓴 추측성 보도는 빠른 속도로 사실마냥 확대 재생산됐습니다. 아마도 우린 그저 경찰을 비판하고 싶을 뿐 진짜 '사실'엔 관심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수사에서 '네티즌'은 큰 공을 세웠습니다. 피해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널리 알려 뺑소니사고로서는 이례적으로 수사본부까지 차려지게 만들었습니다. 흥덕경찰서에 뺑소니 전담관은 원래 3명이었지만 29명까지 수사 인력이 늘어났고, 수사본부가 꾸려진 당일 재수사에 힘입어 결정적인 CCTV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결국 네티즌이 일등공신임을 증명합니다. 하지만 언론에 드러나는 수사과정의 극히 일부만 보고 경찰의 공이 없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과연 이번 사건에서 '크림빵'과 '만삭 아내'라는 사연이 없었어도 네티즌들이 이와 같은 관심을 보였을까요? 현재도 억울한, 그러나 이름 없는 많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번 수사에 활용된 CCTV 화질이 나빴던 건 모두 사고지점 근처 민간 CCTV였기 때문입니다. 경찰 방범용 CCTV는 해상도가 좋아 차종과 번호판 식별이 가능하지만 사고지점 근방엔 설치돼 있지 않았습니다. 예산 등을 이유로 아직 CCTV 설치 의무규정은 없는 상태입니다. 경찰과 네티즌을 대결구도로 놓고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어떤 사건이든 경찰이 충분한 예산과 인력을 들여 수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필요 시 시민들의 전문지식을 제공해 힘을 보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보배드림에서 저희한테 도움을 준 부분도 있고 억측해서 오히려 수사에 지장을 초래한 부분도 있죠, 수사본부가 차려지지 않았다면요?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었으니까. 부품가게 탐문해서 단서 잡은 건 결국 기존 교통조사관들이거든요. 시간은 더 걸렸겠지만 결국 잡았을 겁니다. 실제 수사를 하는 입장이랑 책임과 부담 없이 훈수를 두는 입장은 좀 다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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