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납작한 얼굴을 '다르게' 묘사하는 '수업'이 필요"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5.01.31 05:25

[저자를 만났습니다] '예술수업'낸 오종우 교수…"내 감각의 본질을 되찾는 주인의식"

오종우 성균관대 교수가 최근 '예술수업'이란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예술은 '나의 감각'을 일깨우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사진=김창현기자 chmt@

지난 2009년 예술과 관련된 교양수업을 하기위해 오종우(러시아어문학과) 성균관대 교수는 2년에 걸쳐 하버드를 비롯한 세계 대학의 모든 커리큘럼을 뒤졌다. 하지만 문화, 예술 관련 조사에서 그가 얻은 건 전문서적들 뿐이었다.

예술의 근본정신을 전해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오 교수는 “그럼, 20년간 공부한 경험을 살려 내가 해보자”며 강의를 개설했다.

‘예술의 말과 생각’이란 강의는 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도스트예프스키의 소설, 샤갈의 그림, 베토벤의 교향곡이 어지럽게 교차하며 떠난 예술로의 여행은 대학 최고의 명 강의로 손꼽히며 ‘티칭어워드’까지 수상했다.

2013년 연구년이 찾아왔다. 강원도에 머물며 연구를 하다, 오 교수는 우연히 한 대학 음악회에 들렀다. 무대에선 색소폰 쿼텟(4중주)이 탱고의 대가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음악을 편곡해 들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편곡된 풍경도 신기했지만, 객석의 풍경은 더욱 놀라웠다.

“이런 장르의 음악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시골 아줌마들이 일순간 조용해지면서 이 음악에 집중하고 있더라고요.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예술적 감흥에 대한 준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인문정신을 수 십 년간 연구해오면서 풀리지 않았던 수수께끼인 ‘연구와 실재의 접목’을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오 교수는 이를 계기로 ‘예술수업’이란 책을 썼다.

예술에 수업이 필요할까. 그는 “그렇다”고 했다. “수업이 강의가 아닌 수련의 의미로 봐야한다는 점에선 그래요. 예술은 ‘나’의 본질적인 감각들을 되찾는 수련이니까요.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 순간의 영감을 통해 만들어낸 감각들은 우리 모두에게 있죠. 예술은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도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이 세상을 더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감각을 깨우는 행위예요.”

피카소가 기차여행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지갑에서 아내의 사진을 꺼내들며 ‘왜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다. 피카소는 이리저리 살피고나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아내는 매우 납작하군요.”

예술은 사실에 답하지 하고, 사실을 넘은 그 무엇의 세계를 되레 끊임없이 묻는 사유의 과정이다. 아내의 납작한 얼굴이 ‘사실’이라면, 사진속 아내의 모든 정체성은 ‘하나’로 귀결될 뿐이다. 예술은 하나의 사실에 여러 가지 해석을 입히는 것, 실질 세계(현실)에 여분 세계(예술)가 따로 분리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과정에서 진가가 드러난다는 것이 오 교수의 설명이다.

니콜라이 게의 ‘톨스토이의 초상’(1884)은 기존 초상화와 다른 구도다. 정면을 응시하지도 않고, 전체를 아우르지도 않아 언뜻 보면 아주 협소하고 조잡해 보인다. 하지만 그림에서 보여주는 명료한 포인트들을 짚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글 쓰기위해 고뇌하는 표정이나 펜을 굴리는 구체적인 손 모양을 자세히 응시할 땐, 그가 집필한 모든 책의 내용들이 서사적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폴 세잔의 ‘사과의 오렌지’(1895),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침실’(1888)에서 정물화로 쓰인 대상들을 (실제 사과보다 맛이 없어 보인다는 등의) 실효성의 관점에서 파악하지 않는 이유는 이를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 자체가 빛나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예술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인간의 ‘호기심’과 ‘해석’에서 찾았다. 지구에서 37만 년을 살았던 네안데르탈인보다 20만년 밖에 살지 않았던 호모사피엔스가 인류 발전에 더 위대한 족적을 남긴 것은 인간의 무력함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자연의 위대함을 알려는 호기심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문명의 진화는 무지를 인정하고 질문을 던지는 행위, 즉 예술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종우 교수는 문학, 철학,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예술과 인간의 삶에 대한 관계를 풀어냈다. 그는 예술은 '호기심'과 '해석'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사진=
김창현기자 chmt@

오 교수는 도스트예프스키의 소설 ‘백치’에서 해석의 확장력에 대한 얘기를 꺼내 든다. 잡다한 일상의 지식으로 ‘세상을 안다’고 주장하는 만물박사 레베제프가 두 청년의 대화에 끼어들어 쉴새 없이 ‘사실’을 주입시킨다. 두 청년이 급기야 한마디 던진다. “도대체 뭘 안다고 그러는거요!”

레베제프의 정보는 두 청년이 알고자하는 정보 너머의 열린 세계에 대한 해석을 가로막고, 무감각이 잉태한 정보의 한계와 위험성을 알려주는 신호인 셈이다.

“시스템이나 규범이 해석한대로 세상을 받아들인다면 피동적인 삶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겠죠. 삶의 주인이 되느냐, 노예로 남느냐는 결국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차이에 달려있다고 봐요.”

‘예술수업’의 결론으로 오 교수는 아주 단순해 보이는 그림 한 장을 제시한다. 마크 로스코의 ‘지평, 어두운색 너머 흰색’이다. 뚫어지게 쳐다보면 어두운색을 지배하는 흰색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이를 ‘스며듦의 미학’이라고 했다.

“로스코는 예술이 체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체험이라고 했어요. 예술은 보고 느낀 바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보고 느끼는 것 그 자체라는 설명이죠. 예술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질의 영역이 아니라 서로 스며드는 삶의 본질이 아닐까요?”

예술을 삶으로 더 끌어들이기 위해, 삶이 곧 예술이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떤 훈련이 필요할까. 오 교수는 “(내) 안에 있는 예술적 감각을 매 순간 잃지 않아야 한다”며 “처음 느끼는 그 감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 확장하는 ‘예술행위’가 필요 하다”고 말했다. 강원도 시골 아줌마들이 그랬듯, '너머'를 이해하는 일에서 예술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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