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만 씨는 예전에 코카잎 재배로 큰 돈을 벌었다. 쉽게 번 돈은 흥청망청 쓰였다. 다른 농부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코카 재배가 한창일 때 이 마을에선 술집만 돈을 벌었다. 농부들의 삶은 그닥 나아지지 못했다. 심지어 윌만 씨는 코카 때문에 테러와 연루돼 6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코카를 유통한 사람들이 그 돈으로 정부에 대항하는 무장조직을 만들었던 것이다. 마을에 군인이 들어왔고, 여기저기 폭탄이 터졌다. 그 와중에 체포된 윌만 씨는 “한 20년 살고 나올 줄 알았다”며 짧은 옥살이에 감사했다.
엔리께 씨는 군사작전 때 이웃들과 함께 야반도주해 옥살이를 하진 않았다. 코카는 카카오보다는 돈을 20배는 더 벌어줬다. 그러나 편안히 살 수가 없었다. 작물을 코카에서 카카오로 바꾼 후 그는 “검문을 받지 않으니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고 아무도 우리를 쫓지 않는다”며 “카카오 덕분에 비로소 평화를 찾았다”고 말했다.
코카는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코카 잎은 고산 사람들의 원기를 북돋아 고된 노동을 이겨내게 도와주는 전통의 약용작물이다. 현재도 코카 생산 중 2/3는 페루정부의 통제 하에 합법적으로 관리된다. 그 나머지가 문제다. 불법적인 코카재배를 위해 페루 아마존에선 200만 헥타르의 삼림이 마구 베어졌다. 이 불법 활동에 기생하는 세력들이 지역에 불안과 폭력을 가져온다. 또한 이웃 강대국들에 ‘코카를 박멸한다’는 빌미를 주어 불법적인 군사작전을 야기한다.
코카 외에 별다른 생계수단이 없던 아마존 농부들에게 절묘한 대안으로 떠오른 게 바로 카카오였다. 원래 카카오는 중남미지역에서 아프리카로 전해진 작물이다. 고대 마야, 잉카인들은 사랑을 나누거나, 전쟁을 수행할 때 카카오 음료를 마시며 원기를 다졌다. 이 음료가 대항해시대에 유럽 상류사회로 퍼져나가며, 18~19세기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위해 아프리카가 본격적인 카카오 생산지로 개발됐다. 아직 생산량이 적은 페루 카카오의 존재감은 세계 시장에선 미미하지만 페루 사회에선 그 어떤 국가 산업보다 크다. 분쟁 대신 평화를 부르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2009년부터 아름다운커피와 거래를 시작한 ‘나랑히요 협동조합’이 큰 역할을 했다. 1964년 창설된 이 조합은 농부들을 모으고 묘목과 기술을 지원한다. 코카에서 카카오로 작물을 전환하느라 소득이 없는 기간에도 농부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생계비를 지원한다. 또, 미국 국제개발처(USAID) 등 국제공여기관과 협력관계를 맺고 가공공장을 지어 완제품을 생산해 부가가치를 높였다. 세계적으로 카카오 가공공장을 보유한 협동조합은 단 3곳인데, 그중 나랑히요 가공공장은 높은 기술력과 생산성을 자랑한다.
올 밸런타인데이엔 지인들에게 초콜릿을 돌리며 ‘돈 대신 평화’를 선택한 카카오 농부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무엇이 옳을까 늘 혼란스러운 현실 앞에서 페루 농부들처럼 진정한 가치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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