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雜s]"대통령께 추가 질문 있습니다"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 | 2015.01.13 21:59

편집자주 | 편집자주|40대 남자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도 여전히 나도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40대의 다이어리입니다. 몇년 있으면 50雜s로 바뀝니다. 계속 쓸 수 있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메모하고 있다. (청와대) 2015.1.12/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2일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연두 기자회견은 '예상대로' 그리 호의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1년전 박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은 출입기자들과 미리 조율된 질문과 답변으로, '짜고 치는 고스톱, 질문도 제대로 못하는 기자들'이라는 비판을 호되게 당했다.
이번에는 질문 내용과 순서를 일체 건네지 않기로 했다고 청와대 출입기자에게 들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보안'이 지켜지리라고 생각은 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10시부터 시작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고 있는 동안, 다음 질문이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돌아다니며 또 다시 '각본 회견'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기자회견 직전이 아니라 이미 그 전날, 오후부터 질문 내용은 사이버 공간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실제로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회견 전날 순번에 따라 질문자를 정했고, 질문내용도 '배분'했다. 이 내용들이 소속 회사들로 정보보고를 통해 알려졌다. 이 정보보고 내용이 돌아다녔거나, 입 싼(손이 가벼운) 기자의 '선심용' 내지는 '과시용'으로 유출됐을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미리 질문내용을 조율하고, 순서를 정한 게 잘못은 아니다. "대통령 기자회견이 재치문답이나 순발력테스트가 아니지 않는가"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은 맞다.
거꾸로 질문을 사전에 주지 않는게 비정상일수도 있다. 국정감사에서도 피감기관을 괴롭히는 고전적인 '비법'이 질문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의원 보좌진들을 막판까지 찾아다니며 질문지를 입수하는게 피감기관 직원의 임무이고, 새벽 다 돼서 못이기는 척 슬쩍 질문지를 주는게 의원실에선 제일 큰 선심이 되기도 한다.

사전 조율되지 않은 질문도 필요하다. 국가의 지도자, 조직의 리더라면 어떤 질문이건 즉석에서 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업무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전에 제시한 질문은 충실한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가 지도자에게서 명확한 국정 방향과 현실 인식을 듣기 위해서라면 질문을 사전에 주는게 중복질문이나, 중언부언답변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단 낫다.

예상가능한 질문에 대해 200페이지에 육박하는 답변 자료를 만든 청와대 실무진들도 아마 질문을 미리 '취재'해서 답변 자료를 만들었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상당한 대목에서 정제되지 않은 단어와, 불안한 제스쳐, '이, 그, 저~...' 하는 불필요한 말들을 반복한 것은 오히려 의외였다.)

물론, 사전에 질문을 제공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생각에는 전제가 있다. 답변에 대한 추가 질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 뿐 아니라 사전에 약속된 기자회견이나 인터뷰는 사전에 질문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13일 있었던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의 신년 기자회견이나 14일로 예정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기자회견도 질문 순서와 내용은 미리 정해졌다.

하지만 사전에 조율된 질문은 '기본메뉴'이고, 진짜 승부는 추가질문과 확인질문에서 이뤄진다.

기자는 쓰는(記) 자들이다. 잘 쓰기 위해선 잘 물어야(問)한다.(기자 생활 20년이 넘었지만, 쓰는 것보다 늘 묻는 게 더 어렵다.)
질문은 서너문장으로 간결하게, 팩트를 담아서, 대답을 예상하고 던져야 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답변에서 질문을 얻는 것이다. 모호한 답변은 의미를 정확히 물어야 하고, 새롭게 나온 말은 꼬리를 잡고 들어가야 한다. 제 아무리 날카로운 질문도 1합(合)으로 끝나면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대통령 기자회견이 긴장감이 없고, 지난해 회견의 '재방송'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질문이 답변으로 이어지고, 다시 답변이 질문을 낳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발언 중에는 최소한 한두번은 더 물어야 할 질문들이 있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이야기를 나눈 청와대 관계자는 "추가 질문은 안된다는 말은 한적이 없다"고 했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걸 모르고 한 얘기는 아니겠지만, 기자들이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내년에는 달라져야 할 일이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추가질문이 자유롭게 있었다면 기자회견은 이렇게 이어졌을 것이다.

-박대통령:김기춘 실장은 사의를 여러번 표명했다. 당면한 현안들이 많이 있어서 수습을 먼저 해야한다. 그걸 먼저 끝내고 결정해야 한다. 특보단을 구성해서 국회와 당청간에 긴밀하게 소통하겠다.
▶김실장이 언제 사의를 표명했고, 이유는 무엇이었나. 비서실장의 거취를 결정할 정도로 중대한 '당면 현안'은 무엇이라고 보고 있나. 특보단은 어느 정도 규모로,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인선 기준은 어떻게 되나.

-박대통령:(비선 실세로 지목받은 정윤회씨와 동생 박지만씨에 대한 논란에 대해 답변하면서 박대통령은 잠시 평정심을 잃은 듯 했다.) " 바보 같은 짓에 말려들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건 박지만씨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가?

-박대통령:기업인 가석방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업이라고 해서 특혜를 받는 것도 안되지만 기업인이라고 해서 역차별을 받아서도 안된다. 국민의 법 감정과 형평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서 법무부가 판단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당 기업들은 단어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텐데, '역차별 받아도 안된다'는 말에 무게를 실은건가. 이 문제에 대해서 법무부가 자체 판단을 보고 했나.

-박대통령:"지금 경제상황을 잘 알지 않나. 경제의 '골든타임' 이라는 절박함을 갖고 경제혁신 3개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한다. 개헌은 지금 해서는 안된다. 지금 하지 않는다고 해도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경제뿐 아니라 개헌도 지금 논의를 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어려운 '골든타임'이라고 하는데, 그럼 언제쯤 개헌 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는지. 현재의 권력구조나 헌법조항은 수정할 내용 자체가 없다고 보는지.

-박대통령:많은 전문가들도 디플레이션까지는 가진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다. 금리 인하 관련해서는 거시 정책 담당하는 기관들과 잘 협의해서 적기에 대응하도록 하겠다.
▶금리인하를 정부가 적기에 대응하겠다는 것은 한은의 독립성을 해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또 하나의 가이드라인으로 시장에 영향을 미칠수도 있을텐데.

-박대통령:지금은 공무원연금 개혁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사학연금이나 군인연금(개혁)은 지금 생각을 안하고 있는데 좀 잘못 알려졌다. 지금 하겠다는 게 아니다.
▶지난해 2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에서는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3개 공적연금에 대해 내년(2015년)에 재정 재계산을 실시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관련법도 개정하겠다"고 했는데 입장이 바뀐건가. 현행법상으로도 공적연금에 대해 올해 재계산을 하도록 돼 있는데.

마지막으로,

-박대통령:세월호 유족분들은 여러번 만났다. 지난번에 못 만난 이유는 국회에서 법안이 여야간에 합의를 위해서 논의 중인데 대통령이 끼어드는 건 일을 더 복잡하게 한다고 생각해서다.
▶그렇다면 이제는 논의가 끝났고, 세월호 특별법도 국회를 통과했으니,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 고통을 위로하고, 정부가 더 살펴줄 곳은 없는지 이야기를 나눠볼 계획은 없는가.

아마도 이 추가 질문이 있었다면 대통령은 "안 만날 이유가 없다. 마음이 아프다. 조만간 만나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추가질문'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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