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기고 쪼개지고 갈라진 '강정마을'에 기적이…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5.01.10 05:32

'미라클 여행기'…책 프로젝트 통해 갈라진 관계 회복할 수 있을까

신문 등 언론에서 가끔 마주쳤던 낯선 이름 ‘강정마을’. 제주도를 여행하는 이들조차 인구 1900명 정도의 이 남단 마을을 찾아가기란 쉽지 않다. 이 마을을 ‘해군기지 건설’ 논란의 주인공으로 곧잘 언급하면서도 실상은 전혀 모르는 것도 이곳을 나와 관계없는 세상 어디쯤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정마을은 대한민국의 땅이고, 우리 일상의 이야기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여기서 출발한다. 제주도를 여행지로만 알고, 강정마을이 무슨 현안을 안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일부의 무지와 무관심을 출발지로 삼았다. 다른 사람 얘기보다 자신의 미래가 더 중요한 청년 백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주인공 최미라는 2013년 10월 인천에서 세월호를 타고 ‘강정 책마을 십만대권 프로젝트’에 참가한다. 3월부터 시작된 강정마을의 ‘평화도서관’ 정착을 위해 3만5000권의 책을 추가로 실어나르는 배에 합류한 것.

낭만과 힐링을 꿈꾸던 주인공이 도착지에서 만난 풍경은 낯설었다. 푸른 바다와 정겨운 시골 마을을 기대했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마을 곳곳을 ‘점령’한 듯한 제복입은 경찰들만 눈에 띄었다.

주인공의 카메라는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는 따뜻한 인간의 촉감을 지닌 바윗돌은커녕, 바다 근처의 풍경조차 담지 못한다. 카메라가 건진 건 철조망처럼 뒤덮인 커다란 공사 벽과 굉음을 울리며 자재를 실어나르는 덤프 트럭, 이리 저리 찢기고 쪼개진 자연의 생명들이다.

주인공이 말을 잃는 사이, 더 큰 공포의 현장이 찾아온다. 미사를 드리려는 신부의 의식을 경찰이 어떤 이유도 없이 가로막았기 때문. 신부는 이유를 설명해달라며 울부짖고, 신도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낸다. 경찰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가까스로 성체의식은 진행됐지만, 상처는 꽤 깊게 남았다.



주인공은 ‘강정마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싶어졌다. 1993년 처음 제주의 해군기지 건설 계획이 수립됐고, 2005년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됐다. 평화롭던 강정마을이 시끄러운 전쟁터가 된 건 이때부터다.

정부가 기지 건설을 위해 합의금을 제시했고, 이에 찬반이 갈리면서 마을 사람들의 관계도 두 조각으로 쪼개졌다. 주인공이 만난 마을 사람들의 애처로운 설명들은 한숨만 불러일으킨다. 부모와 자식이 의절하는 것은 기본, 아침 인사조차 빼먹지 않던 형제같던 이웃들이 남남으로 등을 돌렸다. 아이들의 유일한 놀이터였던 바닷가는 이제 출입금지 지역으로 가로막혔다. 아이들은 장난스럽게 말한다. “우리 마을에 아무것도 안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자연은 찢겨졌지만, 마을 사람들의 관계는 회복해야한다는게 ‘책 운동’의 목적이다. 갈라진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는 힘은 책을 통한 문화적 소통뿐이라는 것. 가져온 책은 인도 곳곳에 버려진 냉장고, 책장 등 활용할 수 있는 공간들에 채워졌다. 급기야 콘테이너 박스를 이용한 마을 도서관도 꾸려졌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을까. 주인공은 여전히 아픔과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에 하염없는 눈물로 대신 대답할 뿐이다. 그 눈물이 많은 이들에게 번져 영화 제목처럼 ‘기적’으로 소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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