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달력엔 '신정'만 있고 '구정'은 없나요?

머니투데이 나윤정 기자 | 2015.02.03 13:16

[우리말 밭다리걸기]27. '신정' '구정'의 어원과 바른표기

내일이면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2월4일)입니다. 올해는 포근한 날씨 때문인지 봄소식을 알리는 버들강아지가 2주가량 빠르게 개화했다는 소식도 들리네요. 한달 전쯤인 지난해 12월31일 보신각 근처에서 타종 한번 들어보려다 밀려오는 '인파'와 더하는 '한파'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 참 빠르구나' 다시 한번 실감하며 회사 책상에 있는 달력을 2월로 넘겼는데요.
그런데 달력을 보니 1월1일은 '신정'으로 표기돼 있는데 음력설(2월19일)은 '구정'이 아니고 '설날'로 표기돼 있네요. 벽달력, 책상달력 등 달력마다 모두 그렇게 표기돼 있습니다. 왜 달력엔 '신정'만 있고 '구정'은 없는 걸까요? 궁금해지는데요.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신정' '구정'을 찾아봤습니다. 신정은 '양력 1월1일, 양력설을 구정(舊正)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을, 구정은 '음력설을 신정(新正)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신정, 구정은 모두 쓸 수 있는 말이라는 얘기인데요. 그런데 왜 달력에서 '구정'이란 말은 찾아볼 수 없는 걸까요. 사전엔 '신정'과 '구정'의 어원이 안나와서 답답한데요.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원문보기)과 한국세시풍속사전(원문보기)에 나온 '설' '구정' 의미에 따르면 양력설을 신정, 음력설을 구정으로 구분하게 된 계기는 일제강점기부터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음력설에 따라 생활했는데요. 태양력(양력)을 사용하는 일본은 19세기 말 우리나라에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우리나라 전통풍속 없애기'에 몰두했습니다. 일본이 1월1일 양력설을 강요한 것은 그들이 따르는 태양력을 우리나라에도 도입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일제강점기가 되자 음력설을 없애고 옛것으로 폄하해 '구정'이라고 칭하고, 새로운 양력설을 '신정'이라고 명칭했습니다. 또 1949년엔 신정이 휴무일로 지정된 대신 달력에서 음력설이 아예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1985년 음력설은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을 단 채 부활되었고 지금의 설날 사흘 연휴가 시작된 건 1989년입니다. 따라서 '신정' '구정' 모두 일제강점기의 잔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 트위터를 살펴보다 이러한 근원에 대한 답변을 발견했는데요.

특별히 '신정'이나 '구정'이라는 말을 쓰지 않도록 정한 바는 없으며, 일본어의 영향을 받았다는 근거 또한 없습니다. 따라서 이 말들을 사용하더라도 잘못은 아닙니다. 다만, 음력으로 한해의 첫날을 일컫는 말로, 낡은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쉬운 '구정'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많으므로 '신정'이나 '구정'이라는 표현보다는 '양력설' '음력설'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신정' '구정' 대신 '양력설' '음력설'을 사용하는 게 낫다는 말인데요. 애초부터 '설'은 하나인 데다 또한 '일본어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근거없다'는 무성의함 대신 역사적 사실을 조금 더 확인해 정확히 알려줬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그렇다면 '신정 '구정' 대신 '새해'와 '설날'이란 용어를 사용하면 어떨까요. 내년 달력엔 '신정' '설날'이 아닌 '새해' '설날'이 적혀 있길 바라봅니다.


'오늘의 문제' 나갑니다. 다음 보기 중 일본식 표기인 것은 몇 번일까요.
① 생떼
② 송년회
③ 닭볶음탕
④ 굴삭기

정답은 ④번입니다. '굴삭기'(掘削機, くっさくき)는 일본식 발음입니다. 따라서 '굴착기'로 순화해 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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