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 꺾은 머독, 해킹 파문이 '해피엔딩'으로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 2014.12.22 07:19

[김신회의 터닝포인트]<52>머독, 신속한 위기 대응...이코노미스트 "시장은 빨리 잊고 용서한다"

편집자주 | 세계적인 기업들이 겪은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일종의 '케이스스터디'라고 해도 좋겠네요. 위기를 황금 같은 기회로 만드는 재주를 가진 글로벌 기업들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사진=블룸버그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뉴스코프) 회장은 별명대로 고집불통의 제왕적 경영 스타일로 유명하다. 그가 호주에서 상속받은 작은 신문사를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을 아우르는 글로벌 미디어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공격적인 사세 확장의 결과였다. 머독은 한 번 목표물로 삼은 사냥감은 가격을 따지지 않고 손에 넣는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왔다.

1988년에 미국의 TV 프로그램 정보 주간지 TV가이드를 30억달러에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이 결과 머독은 1991년에 70억달러가 넘는 부채로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2007년에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모회사인 다우존스를 55억달러에 낚아챘다. 머독은 당시 가치로 제값의 2배 이상을 치를 정도로 공격적이었다.

물불 안 가리는 머독의 성향은 2011년에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그가 소유한 영국 대중지 뉴스오브더월드(News Of the World)가 전화 해킹 파문에 휩싸인 것이다. 특종을 위해 유명인은 물론 살해된 여고생의 휴대전화 음성 사서함까지 열어본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뉴스오브더월드는 2011년 7월, 창간 168년만에 폐간됐다. 머독이 호주에서 처음으로 영국에 진출해 뉴스오브더월드를 손에 넣은 지 43년만이었다.

당시 영국 의회 청문회에 참석한 머독은 "내 인생에서 가장 굴욕적인 날"이라고 심정을 밝혔다. 그는 해킹 파문으로 영국 위성방송 비스카이비(BSkyB)의 잔여 지분을 모두 인수하려던 계획도 포기해야 했다. 영국 미디어시장을 정복하기 위해 수십 년간 공을 들인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상황이 이쯤 되자 업계에선 머독의 시대가 끝났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특히 뉴스코프의 거침없는 사세 확장에 숨죽이고 있던 경쟁사들은 머독의 도덕성을 헐뜯으며 그를 악덕 자본가로 몰아세웠다.

그러나 머독의 미디어 제국은 무너지지 않았다. 머독 가문은 뉴스오브더월드 사태 이후 재산을 두 배로 불렸고 머독과 함께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두 아들, 라클랜과 제임스의 자리는 더 탄탄해졌다. 전화 해킹 파문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일자 최신호에서 머독 가문이 위기에서 되살아난 것은 기업 세계에서 때로는 패배가 예상치 못한 승리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머독은 비난 여론에 밀려 강요된 선택을 해야 했다. 평상시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이지만 결과는 뜻밖이었다. 마지못해 폐간한 뉴스오브더월드는 1980년대에 이미 사양길에 들어섰다. 사실상 필요한 구조조정이었다. 비스카이비 인수를 포기하고 그 자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했더니 주가가 크게 올랐다.

뉴스코프의 분사 결정도 마찬가지였다. 머독은 지난해 5월에 회사를 신문·출판 부문을 담당하는 '뉴스코프'와 영화·TV를 담당하는 '21세기 폭스'로 쪼갰다. 신문 부문을 따로 떼어낸 결정에는 해킹 스캔들을 둘러싼 책임 부담이 영향을 미쳤다. 어쨌든 회사를 성장 잠재력이 큰 영화·TV 부문과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출판 부문으로 나눈 것은 투자자들이 오래 전부터 요구해온 것이었다.

미국 투자분석업체 샌포드 C. 번스타인의 분석에 따르면 머독은 해킹 파문으로 5억달러 이상의 비용을 치러야 했지만 주주들은 머독이 비스카이비 인수를 포기한 것만으로도 26억달러나 되는 이익을 챙겼다.

이코노미스트는 머독의 반전이 한 세기 전 머독만큼 인기가 없었던 '석유재벌' 존 록펠러를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록펠러는 막대한 반독점 관련 벌금을 물고 자기 회사인 스탠더드오일을 쪼개야 했는데 그 결과 오히려 더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머독의 '해피엔딩'이 기업 세계에서 수장이 위기에 재빨리 대응하고 주주친화적인 전략을 쓰면 '용서'가 빠르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줬다며 투자자들의 기억력은 정말 짧다고 지적했다.

21세기폭스가 최근 타임워너에 800억달러 규모의 인수 제안을 했다가 철회한 것이나 분사한 뉴스코프가 예상과 달리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 같은 신문 인수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도 머독의 경영방식상 변화를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용서와 짧은 기억력에 의지해 모든 위기를 돌파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상장기업에서는 위기 대응책의 하나로 수장을 갈아치우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머독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의결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다만 머독이 스캔들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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