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해산'…오랜 '종북' 논란 종지부

머니투데이 박경담 기자 | 2014.12.19 16:35

[the300][통진당 해산]보수·진보 대북관 놓고 첨예 대립… 진보 간 갈등 소재로도 작동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의 해산과 진보당 소속 의원 5명의 의원직 상실을 결정한 1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헌재는 이날 법무부의 청구를 받아들여 통합진보당을 해산함과 동시에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도 모두 박탈했다. 이번 해산 결정은 우리나라 헌정사상 헌재 결정으로 정당이 해산된 첫 사례다. 2014.12.1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북한 추종', 이른바 '종북'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의 핵심 논리였다. '이석기 사태' 등에 비춰봤을 때 통진당은 북한을 따르는 위헌정당이라는 게 법무부의 논리였고, 헌법재판소는 이 주장을 인용했다.

짧게는 2011년 통진당 출범 이후, 길게는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종북'은 민족주의 노선을 걷는 이른바 '자주파'들에게 멍에처럼 작용해왔다. 이날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오랜 '종북' 논란도 사실상 종지부를 찍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19일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숨은 목적을 갖고 활동했으며 이것이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며 해산을 선고했다. 해산에 대해 9인의 재판관 중 8명이 인용, 1명이 기각 의견을 표시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헌법재판소는 기계적으로 법리를 적용하기보다 해석하는 곳인데 해석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무적·정치적 판단을 한다는 것"이라며 "(헌재는) 통진당이 '종북'이라고 손을 들어준 것이다"라고 말했다.

통진당 해산까지 이르게 한 '종북' 논리는 보수 진영이 진보세력, 특히 그 중에서도 NL(민족민주)계열을 공격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써온 무기였다. 분단 체제의 한국에서 '종북'이라는 공격논리는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2003년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2005년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의 '6·25는 통일 전쟁이다' 발언, 최근 미국 시민권자인 신은미 씨의 강연 논란까지 자주파 진보와 보수 진영은 대북관을 두고 대치했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대한민국이 종북세력의 놀이터로, 국회가 종북세력의 해방구로 전락하는 것은 오늘로 종지부를 찍었다"며 "헌재 결정은 종북 논란의 끝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종북 논란에 대해 통진당은 '낡은 논리'라는 입장이다. 이정희 통진당 대표는 헌재 선고 뒤 "오늘 정권은 자주·민주·통일의 강령을 금지시켰지만 아픈 한반도에 대한 사랑마저 금지시킬 수는 없다"며 "종북몰이로 지탱해온 낡은 분단체제는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이 열리고 있다. 2014.12.19/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종북'은 진보진영 내부의 갈등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른바 '평등파'로 불리는 PD(민중민주) 계열과 '자주파'로 불리는 NL(민족해방) 계열의 대립이 대표적이다.

민노당의 원년 멤버는 평등파인데 자주파가 2001년 대거 입당하면서 두 정파 간 긴장 관계가 발생했다. 2004년 총선에서 '탄핵 역풍'으로 민노당은 지역구 의원 2석, 비례 대표 8석 등 10명의 국회의원을 내며 정파 갈등은 잦아드는 듯 했다. 원내 진출을 발판 삼아 민노당은 노동·환경·여성 등 그동안 한국 정치가 소홀히 했던 의제들을 적극적으로 다뤘다.

그러나 두 정파는 끝내 북한에 대한 입장차를 극복하지 못했고 이는 진보 정당의 분열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게 2006년 민노당 전현직 간부가 북한에 당원 정보를 넘긴 '일심회 사건'이다. 2008년 민노당 심상정 비대위는 당 혁신 차원에서 일심회 관련자 제명을 추진했다. 하지만 대의원대회에서 제명안이 부결되자 평등파는 민노당을 떠났다.

2011년 진보 진영은 갈등을 접고 통합을 꾀했다. 자주파·평등파에 이어 친노계인 국민참여당까지 합류해 통진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이들의 밀월 관계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2012년 총선에서 벌어진 부정 경선 파문은 '2차 분당'으로 이어졌다.

당시 통진당 내 자주파는 다른 정파와 달리 당 진상조사위원회가 결정한 '19대 당선자 중 비례대표 의원직 사퇴'를 거부했다. 중앙위원회 폭력사태까지 겹치며 평등파와 친노계는 탈당 후 진보정의당을 새로 만들었다. 이로써 19대 총선에서 13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통진당은 반으로 쪼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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