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톡톡]신들의 아이들

머니투데이 황인선 문화마케팅 평론가 | 2014.12.20 06:11
무자식 상팔자 모임이 있다. 결혼은 했으나 자식이 없는 사람들 모임이다. 5쌍의 무자식 커플이 있고 거기에 나는 옵서버로 꼈다. 나는 아들이 둘 있다. 회원은 발레 커플, 콘텐츠 사업 커플, 소울 가수와 공무원 커플, 기업 홍보와 장애인 인권운동 커플, 자칭 영양 고추 아가씨 출신 골드 미스와 미스 스토리텔러 등 10여 명이다.

대부분 문화 일을 하다 보니 각자의 공연에 초대하고 뒤풀이로 수다 떨고 돌아가며 집에 초대한다. 문화적 삶의 주제를 가지고 흥이 나면 즉석에서 발레 제스처를 취하고 즉흥 창을 부르는 모임은 그리스 향연도 올림포스 제전도 물론 아닐 것이지만 그 잠깐 우리끼리는 신이 된다. “인간들 말이야… 하하하. 초코(개 이름) 이리와. 네가 헤르메스다.”

거기서 항상 빠지지 않는 게 애완동물이다. 참, 애완동물이라고 하면 안 된다. 나처럼 개념 없는 사람이 가끔 ‘개 xx’하면 분위기 얼어붙는다. 반려동물이란다. 모임에서 반려동물은 가족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데, 집에서 모일 때는 개나 고양이가 불쑥 불쑥 안겨오고 쉴 새 없이 관심을 가져 달라고 애교를 부린다. 아이 같고 신 앞에 청원하는 인간 같다.

팔자에도 없이 무자식 상팔자 모임에 갔다가 나는 그들 동물들이 인생만큼이나 견(犬生), 묘(猫生)이 있을 거라고 느끼게 되었다. 회원님들은 동물병원에서 산 예쁜 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애꾸 고양이, 치매 들린 늙은 견옹, 버려졌던 개… 나쁜 악신(惡神) 아버지, 무정한 엄마에게 버려져 황무지로 유폐된 전령들일까. 내가 잠깐 같이 했을 뿐인데도 동물들은 먹을 것과 같이 놀아주는 다정함을 더 갈구한다.

유자식인 나는 그 동물 전령들을 보면서 무엇보다 내 아들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어려서는 제우스였다가 사춘기엔 오이디푸스의 왕이 되며 장년이 되면 늙은 리어왕이 될 것인데… 나는 어렸던 아들들에게 꽤나 무심했다. 아들들은 나를 악신의 아빠 대리인으로(Agent) 보았을 것 같다.

첫 아이를 낳아 1년을 지나는 시기에 아내가 나를 빵점 아빠라고 했었다. 아이들은 이제 한 놈은 군인이 되었고 한 놈은 사춘기를 지나 수염이 거뭇해지는 곧 고딩이다. 나는 제우스였다가 이제 오이디푸스의 왕이 되고 있다. 무자식 상팔자 모임에서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식들은 어쩌면 신들의 아이일지도….’


세상은 상징의 숲이며 신화는 현실에서 나왔을 텐데 왜 나는 자식을 신화로 보지 않았을까. 우리 조상님들은 삼신할미가 점지해준 자식들이라고 현명하게 자식들의 독립적이고 신적인 탄생의 가치를 인정했었는데…

한때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다가 생명의 지배자는 결국 유전자들이고 우리들은 그 숙주일 뿐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황당한 비유일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 유전자 의미를 삼신할미 사상으로 미리 알았던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자식은 내가 낳은 것이 아니고 초월적 힘이 잠시 맡겼다는 그 생각.

하나는 과학으로 하나는 신화로 풀었을 뿐. 유전자든 삼신할미든 둘의 공통점은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만큼 그렇게 생명과 운명의 주체는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요즘 사회학의 테마기도 하다. 자유는 있으나 주권은 없는. 그렇다면 부모들은 자식들의 소유주가 아니고 잠시 신탁을 대행 중일 것을! 그들은 결국 그들의 하늘로 커갈 것인데.

그렇다면 인간인 나는 신의 아이들에게 무책임한 대리인의 죄를 짓고 있던 건 아닌가! 신의 아이들은 내 곁에 결국 파랑새로 있을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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