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들아, 1급 시각장애인으로 파산한 이 아저씨를 보라"

머니투데이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2014.12.13 06:30

[최보기의 책보기]'파산'

살면서 겪지 말아야 할 일이야 많고 많지만 그 중에서도 총 맞거나, 감옥에 가거나, 눈이 멀거나, 깡그리 파산 당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중에 총 맞는 일 빼고 나머지를 다 겪은 사람이 쓴 책이 ‘파산’이다.

지금은 누리꾼들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은 하이텔과 천리안의 시절, 이십대 후반과 삼십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이 인터넷, 인터넷 하면서 창업의 대열에 나섰다. 그들을 벤처기업가라고 했다. 광고를 보면 돈을 주겠다는 골드뱅크부터 검색 포털 사이트라는 네이버, 무슨 서버를 구축해 전 국민이 이메일을 공짜로 쓰게 하겠다는 한메일, 잊었거나 잃어버린 동창들을 다 찾아주겠다는 스카이러브 등등이 창업될 때만 해도 속 모를 어른들은 ‘저러다 말겠지’했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대한민국은 벤처기업 광풍이 일었다. 액면가 5000원의 A기업 주식이 코스닥에 상장되자마자 주가가 정확히 85만 원까지 치고 올랐다. 물론 A기업은 그 후에 파산했다. 그 몇 년 동안 수많은 젊은 벤처 사업가들이 화려한 무대 조명을 받다가 한 순간에 사라졌다. ‘아리수미디어’ 역시 그런 회사 중 하나였다. 디지털 교육 콘텐츠를 표방했던 아리수미디어는 10 여 년 동안 업계를 주름잡으며 임직원 120 명, 매출이 백억 원 대에 이르는 발군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심대 초반의 젊은 창업가 이건범의 기사가 연일 나왔다. 그 와중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전통적 기업문화와 벤처적(또는 민주적) 기업문화의 충돌, 창업 멤버와 신규 진입 멤버 간의 갈등, 대표의 일천한 기업경영 경력이 저지르는 헛발질 등등, 그리고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파산한 아리수미디어의 기업문화 안에는 그가 서울대 재학 때 두 번씩이나 감옥에 갇혔을 만큼 민주화 운동을 벌이면서 몸에 벤 ‘지나칠 정도의 정직’도 포함된다. (그는 파산 후 ‘내 청춘의 감옥’이란 책을 통해 감옥 생활의 디테일과 자신이 꿈꾸는 사회를 생생하게 기록했다.)


그때도 지금도 저자 이건범은 1급 시각장애인이다. 철저하게 파산 당했고, 눈도 잘 보이지 않는 저자는 그러나 그 심난한 운명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는 지금 재산과 시력을 잃었으되, ‘없어서 더욱 치열하고 행복한 인생’을 얻었다. 취업, 연애, 결혼이 어렵다고 망연자실해 있는 이 땅의 청춘들아, 이 책을 보라. 그럼 앞 길이 보이고 힘이 불끈 솟을 터.

요즘 누리꾼 사이엔 ‘부러워하면 진다’는 말이 유행이다. 그런데 집도 절도 없는 저자의 넘치는 에너지를, 집이 있어 절이 필요 없는 내가 부러워할 때가 많다. 지금 나는 파산자 이건범에게 지고 있는 것이다.

◇파산=이건범 지음. 피어나 펴냄. 288쪽.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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