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개발 소용돌이속 유령된 '세운상가'

머니투데이 이재윤 기자 | 2014.12.13 06:24

[부동산 '후']공원화 사업 '무산' 주민갈등만 남겨, 오른 땅값에 '발길도 뚝'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와 세운초록띠공원 전경. / 사진 = 이재윤 기자
"개발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장사나 좀 더 잘 됐으면 하는데 유령상가로 전락해 버렸어요. 이곳에서 20년 넘게 장사하는데 손님은커녕 문 닫으려는 상인만 늘었습니다. 저도 물건 정리되면 나가려고요."(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조명상가 업주 최모씨)

대한민국 최초 주상복합건물이자 1980년대 전자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한 서울 종로구 장사동 일대 '세운상가'. 30년 이상 개발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슬럼화가 심각한 그야말로 '유령상가'가 돼가고 있다.

1조원 넘는 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예측됐던 세운상가 공원화 사업은 주민 갈등만 남긴 채 백지화됐다. 세운상가는 존치가 결정됐고 낙후된 노후건물들은 분할개발을 추진 중이지만 크게 오른 땅값에 발길이 끊겼다.

1967년 개관한 세운상가 전경. / 사진제공 = 서울시
◇대한민국 실리콘밸리 '세운상가'
반듯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서울 지하철1·3호선 종로3가역(종로3가)에서 3·4호선 충무로역(퇴계로3가)에 위치한 세운상가. 일제강점기에 폭격으로 인한 화재 확산 방지를 위해 비워둔 땅(공지)이었던 부지는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판자촌'이 됐고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1966년 당시 밀집한 윤락업소와 판자촌 2200여가구를 정리하기 위해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윤락업소가 미아리 텍사스촌 등으로 밀려나면서 구역지정 1년 만인 1967년 현대상가가 처음 준공됐고 이어 대림, 청계, 삼풍 등 참여기업의 이름을 딴 '주상복합건물' 8개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8~17층 규모로 지하주차장과 지상 1~4층엔 상가가 들어서고 5층부턴 아파트가 자리잡았다. 아파트에 엘리베이터도 처음 설치돼 세간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인근에 밀집한 노후 건축물 전경. / 사진 = 이재윤 기자

세상의 기운이 다 모인다는 의미의 '세운'이란 이름이 붙었고 고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가 개관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후 연예인과 교수 등이 아파트에 입주하며 인기몰이를 했고 상가도 전자제품을 중심으로 활발히 거래가 이뤄지는 등 승승장구했다. 이때부터 "세운상가에선 잠수함도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겨났다.

1980년대 PC(개인용컴퓨터) 보급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세운상가는 전자상가로서 더욱 위상을 높였다. '컴퓨터 좀 안다'는 사람들은 세운상가로 모여들었고 IT(정보기술)관련 창업자들도 이곳에서 첫 발을 내디뎠다.

국내 벤처 1호인 'TG삼보컴퓨터'는 1980년 7월 세운상가에서 자본금 1000만원으로 시작해 2000년대 매출이 4조원을 넘기도 했다.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 서울대 컴퓨터연구회 출신들이 개발한 '한글과컴퓨터'도 1989년 4월 세운상가에서 시작했다.

세운상가 철거 계획이 전면철거(좌)에서 분리개발로 변경됐다. / 자료제공 = 서울시
30년 넘게 부품업소를 운영해온 강모씨(70대)는 "10~20년 전만 해도 정말 밥도 못 먹고 일할 정도로 바빴다"고 회상했다.

세운상가는 1990년대 들어서면서 '용산전자상가'에 점차 자리를 내줬다. 1987년 용산역 인근에 위치한 청과물시장을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으로 옮긴 자리에 용산전자상가를 만들고 세운상가 상인들이 이전했다. 비슷한 시기에 강남이 본격 개발돼 주상복합아파트도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청계천 이후 '녹색개발' 무산…대안도 '무색
용산으로 옮겨간 수요에다 인터넷 거래도 활성화되면서 세운상가를 찾는 발길이 뚝 끊겼다. 낡은 세운상가는 슬럼화되기 시작했고 서울시는 1995년 공원화를 결정하고 이때부터 철거를 통한 변신을 꾀했다.

세운상가 인근에 밀집한 노후건축물에 들어선 상가들. / 사진 = 이재윤 기자
세운상가 철거는 2006년 서울시장선거에서 오세훈 전 시장이 당선되면서 본격 추진됐다. 오 전시장은 이명박 전시장의 청계천 복원사업과 연계해 세운상가를 전면철거하고 공원화하는 이른바 '녹색개발'을 내세웠다.

총 3단계에 걸친 공원화사업을 통해 슬럼화된 세운상가를 정리함과 동시에 주변 노후 건물들은 고층빌딩으로 재개발한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 계획으로 2008년 종로3가에 위치한 3748㎡ 규모의 현대상가가 철거되고 '세운초록띠공원'으로 만들어졌다. 철거비와 상인이주비 등으로 1000억원 넘는 서울시 예산이 투입됐다.


서울시는 2012년까지 전체 상가를 철거할 계획이었으나 이 과정에서 상인들의 반발과 천문학적인 비용에 발목이 잡혔다. 막대한 규모의 보상비 등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주변의 여론도 따가웠다.

세운상가 철거계획은 지난해부터 180도 달라졌다. 서울시는 공원화 계획에 투입되는 자금이 1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기존 전면철거 방식의 통합개발이 아닌 분리개발을 추진토록 방향을 틀었다.

지난해 3월 구역지정을 해제, 철거계획을 백지화한데 이어 6월 세운상가는 남겨둔 채 주변지역을 크게 8개 구역(세운2·3·4·5·6-1~4구역)으로 나눠 개발하도록 하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변경계획안'을 발표했다. 세부 구역은 170여곳이 넘는다.

서울시 관계자는 "세운상가 주변을 일률적 대규모 통합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주요 도로와 옛 길 등 도시조직의 보전과 구역별 여건을 고려해 개발하는 것"이라며 "1000~6000㎡ 소규모로 분할해 개별적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세운상가 1층 상가 내부 전경. / 사진 = 이재윤 기자

사업시행인가 준비단계에 있는 4구역은 기존 사업규모를 그대로 유지키로 했다. SH공사가 사업시행자로 나서 공영개발을 추진 중인 4구역은 문화재 주변 고도제한을 받아 최고 높이 62m(16층) 규모로 재개발된다.

동시에 2008년 구역지정 이후 5년 넘게 묶여있던 개발행위 제한도 풀렸다. 세운상가는 대부분 건축물 안전점검 결과 B~C등급으로 일부 수선을 통해 계속 사용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됐지만 주민 의견에 따라 리모델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주민들과 부동산업계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분할개발 확정 초기에는 슬럼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사업성을 이유로 정작 정비사업은 이렇다할 진척을 내지 못하고 있다.

K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문화유산인 종묘가 있어 일부 구역의 경우 고도제한 등으로 사업성이 낮고 매장문화재 등의 확인절차도 거쳐야 한다"며 "현재 토지주와 정비회사간 민사소송을 진행 중인 곳도 있다"고 말했다.


◇공시지가만 '2배' 껑충…"사업성 없어
현지 부동산업계는 개별 정비사업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개발행위제한구역으로 묶인 후 토지가격이 급격히 올랐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토지가격이 오르다보니 사업성이 떨어져 정비사업을 추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실제 세운상가 일대는 1970년 이전에 지어져 40년 넘은 건축물들이 전체의 72%를 차지할 정도로 노후됐지만 30년 넘도록 정비사업이 시행된 곳이 단 2곳(국도호텔, 남산센트럴자이)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한 필지로 된 종로구 청계로 159(장사동 116-4번지) 세운상가의 올해 공시지가는 3.306㎡(이하 3.3㎡)당 5752만원으로 개발행위제한 이전인 2004년(2856만원)보다 2배가량 뛰었다. 주변 노후건축물도 비슷한 상승폭을 나타냈다는 게 부동산업계의 설명이다.

업계에 따르면 상가매매의 경우 165㎡(이하 전용면적)를 기준으로 매매가가 15억원~25억원선이다. 이들은 3.3㎡당 평균 3000만~5000만원선이며 대로변의 경우 1억원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제 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제대로 된 금액을 산정하긴 어렵다고 귀띔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 3일 서울시 건축위원회를 통과한 6-3구역 내 1·2구역에 들어설 계획인 지상 20층, 연면적 14만4472㎡에 달하는 업무용 오피스빌딩 추진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지 Y공인중개업소 대표는 "민간사업자들이 사업성을 검토하곤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낙후된 건물이 많아 정비사업을 지나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시기가 언제일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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