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바다와 숲을 걷는다…깊어진 음악은 덤"

머니투데이 제주=김고금평 기자 | 2014.11.29 05:15

[제주도로 몰려드는 대중문화예술인]①'자연의 소리' 장필순-"아련한 그리움을 부르는 곳"

편집자주 | 신촌, 홍대, 대학로 등 도심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이 개성과 예술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제주도가 문화의 대안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자본으로 잠식된 획일화된 문화예술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제주도로 속속 모여드는 대중문화예술인들. 제주도는 이들에게 개성과 창조성을 되살리는 기회의 땅일까. 과열되는 부동산 투기, 위락 시설 위주의 저질화 등 갖은 오명에도 예술인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일상인도 예술인이 되는, 제주도에 안착한 이들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봤다.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촬영에 응한 가수 장필순은 민낯을 드러내듯 "제주도의 삶은 '나'를 가리는 것이 아닌 '나'를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사진=김고금평 기자
화장기 하나 없는 건조한 피부에 매력적인 눈망울을 소유한 그의 얼굴과 마주하니, 겨울에 막 접어든 제주도의 날씨를 연상시켰다.

‘제주도민 다 된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자, 그는 “산과 물을 만나면 그렇다”고 웃었다. ‘허스키 저음의 상징’ 장필순(51)은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마련한 1호 대중예술인이다. 지난 2004년 내려왔으니, 올해로 만 10년째다.

그의 제주도 이전은 계획된 삶의 수순이 아니었다. 2002년 6집을 내놓고나서 그는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잇따른 평단의 찬사, 다시 찾아온 음악에 대한 희열감으로 활동에 대한 에너지가 더욱 거세진 시기였다. 하지만 2년 쯤 지나자, 도시에 익숙해진 자신의 삶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 멈춘 시간, 욕심을 버리니 많은 것들이 보인다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수도권부터 강원도까지 여러 곳을 후보지로 정해놓고 떠날 생각만 했죠. 그러다 제주도를 만난 거예요.”

제주도의 시간은 멈춰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쏜살같이 흐르고 있었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욕심을 버리니, 많은 것들이 보였다.

장필순은 배추와 고추, 허브를 직접 기르며 자연과 매일 생활한다. 그는 "늘 생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사진=김고금평기자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에 핀 꽃들을 보면,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만날 수 있어요. 그렇게 예쁜 장면 얻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요? 호호.”

그는 매일 바다와 숲을 거닌다. 10분만 걸으면 산과 물이 있는 곳, 4계절을 매일 아침마다 만날 수 있는 곳, 계획된 시간표가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곳. 그 제주도에서 그는 “생태 다큐멘터리를 늘 찍고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글세, 뭘 계획하려고 하면 안되는 것 같아요. 처음 내려왔을 땐 ‘잠깐 쉬어볼까’하고 심정으로 지냈는데, 어느새 10년이 됐잖아요. 음악을 더 잘하려고 내려온 게 아니라, 음악을 더 안하려고 내려온 셈이었죠. 도시를 염두해두고 내려오는 삶은 제주도의 진짜 삶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어요.”

그는 배추와 고추, 허브를 기르며 자급자족하는 자연인으로, 몇 만원짜리 청바지도 살까말까 고민하는 평범한 아줌마로 살아가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기 전날인 지난 14일, 그는 제주 시내 한 공연장에서 기타 하나로 때론 나지막이 속삭이듯, 때론 사색에 빠지듯 감성의 선율을 들려줬다. 푸른 밤 앞에서 자유롭게 바위를 때리는 파도처럼 그는 철저한 자유인의 흔적을 토해내고 있었다.

가끔 제주 시내에서 무대에 오르는 장필순. 그는 도심속 소음 음악이 아닌 자연을 닮은 원초적 선율을 저음의 허스키 보이스로 실어나른다. 사진은 지난 14일 제주 시내 공연장에서 단독 공연을 펼치는 모습. /사진=김고금평 기자

“음악적으로는 서울에서 가졌던 욕심과 제주도에서 가진 욕심의 차이가 없어요. 자신에게 최고가 되려는 욕심은 한결 같죠. 다만 음악의 방향을 설정하고, 음악을 제작하는 현실적인 부분에서의 마찰 같은 게 없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랄까. 지금까지 해 온 음악 중 제가 할 수 있는 음악을 뽑아내는 것에 대한 자유로움, 그래서 제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면이 더 특별해진 것 같아요.”

그는 자연의 동력으로 음악의 자유로움을 얻었다. 잊혀진 하나음악 계보는 이곳에서 조동익, 윤영배가 모이면서 푸른곰팡이라는 음악기획사로 다시 태어났다. 도시의 소음 음악과 결별한 생태 음악의 재창조인 셈이다.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에 위치한 장필순의 집은 절친한 음악가 두 사람만 드나들 정도로 개방에 인색하다. 그 집에 결혼 전 이상순의 부탁으로 이효리·이상순 부부가 다녀갔다.

“효리가 집을 방문했는데, 집안에 못들어오더라고요. 많이 어색했겠죠. 음악적 친분 관계도 처음이니까. 마당에 서성이다, 결국 마당 나무바닥에서 너무 깊은 잠을 자더라고요. 그리곤 도시에서 힘든 일을 어렵게 꺼내는데, 진심이 느껴졌어요. 제주도로 내려오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 현재·과거 공존의 매력…"내게 집중하고, 동네가수로 가끔 공연도"

'제주살이' 10년째 이어오는 장필순. /사진=김고금평 기자
장필순이 꼽는 제주도의 매력은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다. 전원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곳은 전국에 많지만, 현실과 괴리가 적은 곳이 제주도라는 설명이다.

“자연이 있는 곳은 자연뿐이지만, 이 곳은 과거의 바다와 숲을 맛볼 수 있으면서 가장 최근의 현재 모습도 함께 느낄 수 있어요. 그런 공존이 오래 머물도록 붙잡아두는게 아닐까요?”

가끔 이웃끼리 저녁 모임을 갖기도 한다. 배우도 있고, 셰프도 있다. 그렇게 만나서 나누는 대화는 도시의 그것과는 내용부터가 다르다.

“도시에선 얘기하고 나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여기선 같이 느끼는 주제를 가지고 대화하니, 잔상에 오래 남아요. 남 얘기대신 자신의 얘기를 많이 하죠. 도시에선 나를 가리고 살지만, 여기선 나를 드러내거든요. 만나서 헤어지는 과정이 일종의 ‘휴식’이 된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깨달았죠. 특히 저같이 폐쇄적인 성격의 소유자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있다고 느낄 정도니까요.”

10년간 제주살이를 한 장필순도 토착민과의 관계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같은 문화안에 살고 있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토착민과 이주민의 이격이 적지 않다는 것. “이제 10년쯤 되니까, 김치도 나눠주시고 고추장도 퍼다주세요. 제주에서 한 두 차례 무대에 오르면 ‘우리 동네 가수 선생이 공연했대’하는 작은 칭찬도 곁들이시죠.”

제주도 이주? 장필순에겐 여전히 ‘무계획의 순응’으로 다가온다. 그냥 와서 보고 듣고 느끼며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가 제주도에서 버티는 또 하나의 힘은 그리움이다. 가족과 떨어져사는 처절한 그리움이 아니라, 로맨틱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아련한 그리움. 그 정서에서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는 게 그가 전하는 10년 제주살이의 비법이다.

“준비운동은 필요없어요. 준비운동이 심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그냥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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