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가는 사회, 위태로운 사람들… '세월호' 참사와 닮아

머니투데이 양승희 기자 | 2014.11.26 05:22

[리뷰]사회 지도층 위선 폭로하는 연극 ‘사회의 기둥들’… 배우 16명의 대사와 연기로 120분 채워

헨릭 입센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연극 ‘사회의 기둥들’. /사진제공=LG아트센터
막이 바뀔 때마다 배를 형상화한 무대 세트가 왼쪽으로 조금씩 기운다. 처음에 평평했던 바닥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제대로 서있기조차 어려울 만큼 가팔라진다.

그런데 무대 위 등장인물들은 아무런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듯 평소와 같이 행동한다. 조금씩 침몰해가고 있지만 누구도 위기를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은 어쩐지 낯설지 않다.

137년 전 노르웨이에서 창작됐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과 놀랍도록 비슷한 이 연극은 ‘사회의 기둥들’이다. 올해 3월 처음 대본을 받은 김광보 연출은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다음 이 희곡이 안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한동안 작품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김 연출은 원작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대사만 다듬어 국내 관객들 앞에 첫 선을 보였다. 원작은 ‘인형의 집’ ‘유령’ ‘페르 귄트’ 등으로 이름을 알린 사실주의 극작가 헨릭 입센의 작품이다.

작품은 노르웨이의 어느 소도시에서 조선소를 운영하는 베르니크의 거실을 배경으로 한다. 베르니크는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기업인이지만, 해고로 노동자를 협박하고 제대로 수리되지 않는 배를 띄우라고 강요하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감춰놓았다.

베르니크의 허위는 자신이 떼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지역사회에 이득이 된다는 명분으로 포장해 추진하려는 상황에서 극대화된다. “내가 공정하지 못한 방법을 쓰는 것도 다 지역사회를 위한 것”이며 “오직 내 손에서 시작된 사업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축복이 될 수 있다”는 말에서 그의 오만함은 낱낱이 증명된다.


김 연출은 이 작품을 “자신이 사회의 기둥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밝혔다. 다른 시대와 국가를 배경으로 하지만 고귀함의 가면을 쓴 채 속으로는 거짓과 탐욕을 품고 있는 우리 사회 권력자들에게 외치는 목소리임에 분명했다.

무대 전환이나 화려한 연출은 없지만 박지일, 정재은, 정수영, 이석준, 우현주 등 실력파 배우 16명이 대사와 연기만으로 러닝타임 120분을 빈틈없이 채워간다. 전달하는 주제의식 또한 가볍지 않지만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위트가 극적 긴장을 해소하면서 몰입도를 높인다.

기울어진 바닥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관객들은 과연 우리 사회의 고장난 부분은 어디인지, 사회를 위태롭게 만드는 자들은 누구인지 묻는다.

◇연극 ‘사회의 기둥들’= 연출 김광보. 출연 박지일, 정재은, 정수영, 이석준, 우현주, 김주완, 이승주, 손진환, 유성주 외. 오는 30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3만~5만원. 문의 02-2005-0114.

김광보 연출이 국내 관객에게 첫 선을 보인 연극 ‘사회의 기둥들’. /사진제공=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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