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문화⑤] 대학, 창의적 인재 기르고 있나

테크앤비욘드 편집부  | 2014.12.21 06:00

취업률 최우선…A학점 남발, 경직된 커리큘럼

편집자주 | 모두 기술개발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술을 통한 혁신만이 살길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와 기업의 문화는 기술이 꽃필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을까.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문화와 환경을 만들고 있을까. 사람들의 삶을 즐겁게 만들고 더욱 쉽고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을 만들어내려면 지금 우리의 생각과 생활의 스타일부터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닐까.


창의성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정의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창의성에는 ‘새로운 독창성’이 공통적으로 언급된다. 최근에는 창의적 산출물을 위한 창의적 사고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기도 한데, 이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기술·과학적 산출물로 연계되면서 사회 전반에 유·무형적인 기여로 연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급기야 정부에서는 ‘창조경제’를 정책화하기에 이르렀다.

무형의 개념인 창의성에 대해 정부에서조차 나서서 육성정책을 펴는 셈인데, 과연 이러한 창의성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로 대표되는 개인에 따른 편차를 제외하고, 사회·환경적으로 학습될 수 있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개인의 선천·후천적 창의성이 자라나기에 적합한 환경인가? 언제부터인가 달라진 사회상이 반영되면서, 우리는 지나치게 자본주의가 중심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 불황이 지속되는 요즘, 학문의 전당이었던 대학은 졸업생의 취업률에 우선 가치를 두면서 특단의 조치에 나서고 있다. 다소 무리하게까지 추진되고 있는 대학 통폐합은 현재의 대학이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준다.


대학은 취업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학점을 남발하는 것도 모자라 GPA(Grade Point Average) 환산에 온갖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김회선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입수한 ‘전공과목 성적평가 분포’ 자료에 따르면, 재학생의 30% 이상 A를 부여하는 대학은 전국 188개 일반대학 중 무려 73.4%에 달하고 있다(놀랍게도 서울대는 인문사회의 몇 개 학과가 A학점 비율이 사실상 100%에 달하는 기염을 토했다). 대학에서 학점의 변별력이 흐려지면서, 사회는 다시 한 번 학벌 위주의 취업으로 쏠리게 된다. 그리고 그 학벌을 얻기 위해서 입시에 매달리는 현상이 다시금 반복되는 것이다.

입시를 최우선으로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점수를 잘 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암기식 교육, 주입식 교육이 이뤄지고, 사교육을 맹신하고 의존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기에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굉장히 경직돼 있다. 사실상 가정과 학교, 초·중·고 및 대학에서 사회 전반을 걸쳐 단계에 맞는 올바른 교육이 기능할 때 창의적인 인재가 꽃필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고등교육기관이며 학문의 중심인 대학이 언제까지고 본연의 가치를 외면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재의 양성을 위해서 자연, 공학 중심인 이공계 대학을 중심으로 현재 대학 교육이 가진 장·단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대학에서의 이공계는 일반적으로 자연, 공학, 의학계열을 의미한다(경우에 따라서는 의·약학은 분리하기도 하나, 인문사회를 제외한 분야를 모두 이공계로 기술했다). 앞서 언급한 취업 위주의 현실에서 이공계는 그나마 형편이 나은 셈이다. ‘2013년 하반기 전국 10개 국립·사립대 취업률’에 따르면, 이공계는 인문계(37.6%) 대비 10.2% 높은 47.8%의 취업률을 보였다. 2014년 상반기 대학 졸업생 수는 인문계 15만 명, 이공계 13만여 명이나, 하반기 취업시장에서도 이공계 우대의 분위기가 감지되는 것을 보면 이 험난한 취업 전쟁에서도 이공계는 그나마 체면치레는 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교육부가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도입할 계획이지만, 시행은 2020년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취업이 용이한 이공계 위주로 학생의 쏠림이 보이고 있다.


학습의 자유 막는 공학교육인증제
현재 이공계와 관련, 대학 및 학생들이 토로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공학교육인증제’이다. 공학인증제는 올해 4월 기준 총 98개 대학에서 시행되고 있다. 전공의 배움을 깊이한다는 측면에서 공학인증의 취지는 매우 바람직하다. 또한 많은 대학에서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는 것은 제도의 장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그러나 공학인증제는 사실상 전공 필수, 전공 선택, 그리고 제한된 교양 시간표 등 학습 시간표가 사실상 거의 완성된 형태로 제공됨에 따라 학생 개개인의 학습에 대한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측면에서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산업체 실무에 좀 더 특화된 인재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모든 이들이 기업 등 산업체로의 진로를 밟지 않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경직된 커리큘럼은 또 다른 배움의 기회를 차단하고 특정 틀에 가두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공대 학생들은 ‘단순하고 무식하다’는 자조적인 우스개가 있는 판국에 학생들을 더욱 더 딱딱한 전공으로 구성된 수업을 마치 공산품처럼 정형화된 형태로 소화한다. 입사시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공학인증제의 실효성은 아직도 그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실제로 서울대, 고려대 일부 학부는 공학인증을 도입하려다 철회한 이후 현재까지 해당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

다만 전공의 심화, 산업체가 원하는 실무형 인재의 양성, 공학인증의 국제적 인정 등의 장점을 고려할 때 필요성은 일견 분명해 보인다. 그렇기에 현재의 공학인증을 보다 유연한 제도로의 변화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요즘 사회 전반에서는 융합학문이 굉장히 화두인데, 아쉽게도 이 융합학문이라는 것은 현재 ‘물리적 결합’에 의해서만 주로 보여지고 있다. 본질적인 학문의 융합, 사고의 융합이 자유롭게 이뤄질 때 사회가 원하는 창의적인 인재는 자라날 수 있다. 즉, 공학계열 학생들에게 다양한 전공 분야의 학습 유연성을 보장하고, 다른 학과의 수강 등 타 분야 학문을 자유롭게 수강함으로써 보다 생각의 틀을 넓히고 자유로운 사고를 유도해 창의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제 기능 못하는 이공계 학생 협업과제
또한 융합과 창의성 함양이라는 측면에서 협업을 강요하는 최근의 분위기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이공계뿐 아니라 인문사회에서도 요구되는 분야이나 이공계 연구의 대부분이 협업 형태로 진행됨을 상기하면 이공계 학생들에게 협업은 굉장히 필요한 역량임은 분명하다.
보통 이공계 학생들이 최초로 경험하는 협업 커리큘럼은 전공 실험이다. 학생들은 3~5인 이내로 팀을 짜고 회별로 실험을 하며 연구의 경험을 쌓는다. 그 외에도 다양한 조별 과제들이 협업 능력을 키우기 위해 학생들에게 주어지고, 학생들은 개인의 역할에 따라 과정을 분배하고 프로젝트를 공유한다.


문제는 협업과제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점이다. 과정보다 결과를, 학업보다 학점을 중시함으로써, 개인의 협업과제는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해서 최대한의 학점을 얻으려는 편법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에 대학은 협업에 대한 개인의 역할을 명확히 부여하고, 학생들 스스로 팀을 조율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가이드를 해줌으로써 학생들이 협업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실제로 이공계 학생들은 협업에 약하다는 편견이 일부 있을 수 있으나, 이는 반복된 학습경험에 의해 개선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분야의 협업과제, 조별과제 등을 부여해 전공분야 뿐 아니라 다른 전공, 다른 분야와의 협업에 효율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창의성을 제한하는 이공계 대학의 또 다른 시스템으로 영어강의를 언급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영어강의가 왜 문제가 되는가 하면, 우선 우리의 언어는 영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은 학문을 후속 세대에게 전파함을 목적으로 한다. 최근 국제화 지표로 인해 많은 이공계 대학들이 영어강의를 의무적으로 편성하게 되는데, 우리 언어로도 어려운 전공과목에 대해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완벽한 의사소통이 가능한가? 특히 이공계는 전공 특성상 원서를 교재로 주로 채택하게 됨을 생각해 보라.


양질의 국문 교재가 부족한 실정인데다, 영어 강의의 편성으로 인해 원서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면 학생들의 수업부담은(사실상 영어부담이지만) 더욱 더 가중된다. 영어가 출세를 보장하고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지는 동안, 우리나라는 강박증처럼 영어에 매진해 왔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대학에서도 국제화라는 미명 하에 저품질 영어강의가 양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영어강의 의무편성, 사고 제한 우려
과거 말레이시아 정부의 영어몰입교육의 실행 및 폐지 사례를 살펴보자. 말레이시아 정부는 수학과 과학의 국제화라는 미명 아래 초·중·고 수학 및 과학 분야의 영어몰입교육을 2003년부터 시행했으나 6년 만에 돌연 철회했다. 이는 영어보다 수학·과학의 학습 자체의 중요성을 인정했다는 반증이다.

현재 사회에서 영어는 언어 그 이상의 수단으로 중시되지만, 생각하기 자체를 영어로 강요함에 따라 언어의 장벽이 사고의 제한을 우선 불러일으킴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언어부터 제한된 사고에서 창의성이 발현될 리 만무하다. 이는 우리 대학생들을 정신적으로도 위축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학습에 몰입하도록 강요한다.


이에 대해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으나 대학은 평가지표 설정에서 끌려 다니다보니 이도저도 못하는 눈치다. 아쉽게도 앞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현실적으로 개선이 손쉽게 이뤄질 수 없다. 다만 대학 안에서도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분명 나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대학이 점차 본연의 자리를 찾아가는 동안,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력은 어떤 형태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기업은 사실상 ‘창의적인’ 인재가 아닌, ‘창의적이기까지 한’ 인재를 원하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케이블TV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은 원작 웹툰에서 본인의 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스펙의 벽을 깨지 못한다.

우리는 기다리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기업은 당장 활용 가능한 인재를 원한다. 그렇기에 기업에서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창의적인 인재를 왜 대학에서 양성하지 못하냐는 볼멘소리를 한다. 사실 각 기업별로 요구하는 인재상을 명확히 정의한다면, 외려 역으로 대학에서 그에 필요한 맞춤형 인재 양성이 용이할 수 있다(다만 모든 기업을 위한 인재 양성이 어려운 것이 문제이며, 또한 그‘맞춤형 인재 양성 교육’을 과연 ‘창의적 인재 양성 교육’으로 부를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그러므로 기업에서는 현실적인 접점을 찾아 대학과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


스펙을 깨는 인재를 선발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기업의 속칭 ‘스펙파괴’ 전형도 결국은 일반전형과 다를 바 없다는 기사도 나왔다. 결국 기업에서 완성된 인재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경력사원 같은 신입사원을 요구하기보다는 발전할 수 있는 인재를 요구하는 것이 정답이다. 이는 물론 기업의 몫이다. 대학에서 양성된 인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기업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는 상당부분 얽혀 있기에 어느 한 부분의 개선만으로는 큰 효과를 볼 수 없다. 다만 최종 목표가 사실상 취업인 이 현실에서 기업이 현재의 ‘완성된 인재를 선발’하는 것에 욕심을 버리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인재를 선별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면 대학과 사회에서도 다양한 인재의 수용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지 않을까?


정형화된 스펙이 아니더라도 사회에서 선택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학생들은 굳이 그 스펙이 필요치 않게 될 것이다.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기업이 지금의 결과에 매달리지 않고, 대학이 눈앞의 취업에 목을 매지 않으면, 오롯이 대학이 학문적 후속세대 양성에 매진할 수 있는 사회가 올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말이다.
글 최숙정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미래인재연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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