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장그래'는 한 수를 놓기 전 이것을 먼저 생각했다

머니투데이 신혜선 부장 | 2014.11.22 06:02

[MT서재] '위기십결'…나아가거나 물러서는 지혜사용법, 반상서 인생의 한 수를 배운다

"백은 이 곳을 끊기 위해 희생타를 던졌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는 '사소취대'(捨小取大)는 바둑의 가장 중요한 명제다. 그러나 어렵다. 어느 것이 작고 어느 것이 큰가. 그걸 보는 눈이 없으면 거꾸로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취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만화 미생 6권-봉수-제1회 응씨배 결승5번기 제5국 조훈현 9단 vs 녜웨이핑 9단 96수. 기보해설 박치문)

인기만화 '미생'(작가 윤태호)이 드라마 덕을 보면서 다시 주목받는다. 종합상사를 배경으로 직장인들의 애환을 어찌 그렇게 속속들이 그렸는지 무릎을 치면서 본다는 입소문으로 떠들썩하다.

하지만 원작 미생의 '맛'은 스토리텔링에만 있는 게 아니다. 총 145수로 끝난 조훈현 9단과 녜웨이핑 9단의 대국의 두뇌게임. 이 대국의 기보(바둑이나 장기를 둔 내용의 기록)를 토대로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선택을 각 수에 빗대 풀어나간 '묘미'가 미생의 진짜 '맛'이다.

박치문 한국기원 부총재가 당시 대국 96수를 해석하며 인용한 '사소취대'는 '위기십결'(圍碁十訣) 중 다섯 번째 경구다. '위기십결'은 8세기 중엽 당나라 현종 때 바둑의 명수 왕적신이 펴낸 책. '바둑을 둘 때 명심해야 할 10가지 계명'을 일컫는다.

중국 고적 전문가 마수취안이 쓴 '위기십결'은 10가지 바둑의 명제와 그에 맞는 중국고전의 일화를 엮은 내용이다. 원제는 '인생정수진퇴지혜서'(人生政守進退智慧書). '나아가고 물러나는 인생의 지혜'라는 다소 진부한 제목이다.

'위기십결'의 첫 번째 경구는 '부득탐승'(不得貪勝: 이기려면 이기기를 탐하지 마라)이다. 승부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그르치기 쉽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저자는 사례를 통해 말로써 이기려하지 말고 분노를 조절할 것을 주문한다. 두 번째는 '입계의완'(入界宜緩)이다. '경계에 들어갈 때는 완만하게 하라'는 의미로 바둑의 싸움이 중반으로 넘어갈 때 너무 서두르지 말고 결정적 시기를 노리라는 의미다. 지나치면 넘치고 그로 인해 화를 입는 일화가 곁들어져 있다.


공격하기 전에 나부터 돌보라는 '공피고아'(攻彼顧我)나 상대가 강하면 나부터 돌보라는 '피강자보'(彼强自保)는 전투(삶)의 기본자세다. 반대로 적과 싸움에서 이기려면 나만이 아닌 상대를 잘 살피는 눈도 중요하다. '신물경속'(愼勿輕速: 경솔하지 말고 신중히 행동하라)이나 '동수상응'(動須相應: 상대가 움직이면 같이 움직여라)이 해당된다.

위험에 처하면 모름지기 버리라는 의미의 '봉위수기'(逢危須棄). 이런 경구에는 큰 이익과 작은 이익을 구별하는 안목, 위험에 처했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택을 한 일화들이 소개돼 있다. '세고취화'(勢孤取和: 세력이 약하면 조화를 도모하라)도 비슷한 자세다.

모든 '한 수'는 결과적으로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비책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이 판단하고 선택한 결과일 뿐'이라는 평범한 진리에 불과할 수 있다. 돌을 버리더라도 선수를 취하라는 의미의 '기자쟁선'(棄子爭先)은 '위기십결'의 핵심으로 알려져 있지만 '신물경속'처럼 서로 상반되는 경구가 위기십결에 함께 포함돼 있음을 생각하면 '비책'은 매번 바뀐다.

선택을 언제 어떻게 취할지는 순전히 자신의 몫이고 책임이다. '가장 뛰어난 묘수는 비책이 아닌 정석'일 수 있다.

◇ 위기십결=마수취안 지음, 이지은 옮김, 도서출판 이다, 2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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