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죽어도 집값 걱정만…" 압구정아파트에 울려펴진 분노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 2014.11.11 14:22

분신자살 故이만수 경비원 노제…"경비원 인권 보장하라"

11일 오전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열린 분신한 경비원 이 모씨의 노제가 엄수되고 있다. /사진=뉴스1
'분신 경비원 사망! 가해자는 사과하라!'
'경비원은 노예가 아니다!'
'입주자대표는 문제해결에 나서라!'

흰 현수막에 검은 글씨. 11일 오전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인근에 어울리지 않는 비장한 현수막 행렬이 늘어섰다.

현수막을 따라 도달한 신현대아파트에서 지난달 7일 입주민의 폭언 등에 시달리다 분신, 투병 한 달여만인 지난 7일 숨진 고(故) 이만수 경비원의 노제가 열렸다.

노제는 고인이 생전에 일했던 아파트 단지 내 관리사무소 바로 앞에서 시작됐다.

관리사무소 건물과 인도 사이 도로를 부분 통제하고 민주노총 조합원과 시민 등 100여명이 '경비노동자 이만수 열사 근조' 등 만장을 휘날리며 노제를 진행하는 동안 뒤편으론 고급 승용차들이 평소처럼 오갔다.

오전 11시10분쯤 고인의 영정과 관을 실은 운구차가 도착했다. 노제의 한 초대가수는 "가장 비싸고 큰 차를 죽어서야 타고 떠난다는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박문순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사무처장은 "이만수 열사는 비정규직의 설움을 받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화상의 고통을 느끼며 운명을 달리했다"며 "그가 죽기 직전 가해자는 '병신 같은 놈'이란 폭언을 했으며 5층에서 음식을 던지고 분리수거를 못한다고 간섭하는 등 인격말살을 일삼았다"고 말했다.

이영철 민주노총 서울본부 직무대행은 추도사에서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이후 2014년 10월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분신하기까지 노동자들의 현실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노동자들에게 폭언을 일삼아 한 가정을 짓밟고 노동자들의 가슴에 못을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며 "그런데도 이들은 애달파하기보다는 아파트 가격이 내려갈까만 염려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동료 경비원도 불이익을 무릅쓰고 무대에 올랐다. 그는 "이만수 동료께 뭐라고 사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제가 이 아파트에서 나가는 날까지 처우와 정년 등의 문제를 놓고 목숨 걸고 투쟁하겠다"고 결의했다. 60세 정년 제한으로 올해 말 해고 대상 경비원은 19명이다.

11일 오전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열린 분신한 경비원 이만수씨의 노제에서 고인이 근무했던 경비실에 영정 사진이 놓이고 있다. /사진=뉴스1
헌화 후엔 운구행렬이 사망 직전까지 고인이 근무했던 103동 초소로 이동했다. 2평 남짓한 초소에 고인의 영정사진과 국화가 놓였다.

'경비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역사의 뜻 이어받아 비정규직 철폐하라'. 유족과 조합원들은 103동 아파트를 바라보며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다. 이후 고인이 그랜저 승용차 안에서 인화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여 분신한 주차장에 국화 여러 송이를 정성스레 헌화했다.

대낮에 아파트 단지 내에 울려 퍼진 낯선 구호와 운구행렬에 주민들 일부는 걸음을 멈추고 노제를 지켜보기도 했다.

노제가 끝나고도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한 입주민 정모씨(77)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데 비교적 수준이 높은 아파트라고 하는데 이런 일이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잘 산답시고 특권의식이 있는 것 같은데 사회적인 이슈가 돼서 알려지고 변화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60대 여성입주민 3명은 불만을 제기했다. 이들은 "우리 아파트에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주변에서 다 물어봐서 창피하다"며 "매스컴이 과장되게 표현하는데 제대로 진실규명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1일 오전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열린 분신한 경비원 이만수씨의 노제에서 고인의 아내가 남편이 근무했던 경비실을 보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뉴스1
앞서 이날 오전 8시부터 한양대병원에서 고인의 발인식이 진행됐고 오전 9시 중구 대한문에선 영결식이 열렸다. 고인은 이날 오후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후 모란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해 가해자로 지목된 이모씨(74·여)는 전날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아가 조문하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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