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에게 왜 55사이즈를 요구하죠?"

머니투데이 박계현 기자 | 2014.11.08 06:00

[직딩블루스 시즌2 "들어라 ⊙⊙들아"]60만원도 안 되는 급여, 무한정 연장되는 인턴기간


#고등학교 때 우연히 한 디자이너의 패션쇼에 매료된 나는 학창시절 4년을 디자이너의 꿈을 위해 차곡차곡 준비했다. 학창시절 실습생·인턴이라는 이름으로 변변한 급여 한 번 받아 본 적이 없지만, 졸업하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꽤 실력있는 디자이너였다. 패션대전에도 나갔고 공모전 입상도 여러 번했다. 졸업과 동시에 꽤 알려진 디자이너 브랜드의 막내 디자이너로 취업하는데도 성공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꿈을 펼칠 기회가 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입사 후 나를 기다리는 것은 '도제식 교육'이 아니라 끝없는 단순노동과 월 급여 60만원. 실무로 배울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단기 아르바이트생이 150만 원을 받아가는 동안 나는 그 반도 안 되는 60만원을 받고 일했다.

보세 옷을 사다가 상표만 바꿔 붙이는 일명 '텍갈이'로 밤을 지새운 것도 여러 번이다. 한 달에 쉬는 날은 채 삼 일이 안됐다. 근로계약서, 4대 보험 모두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였다. 단추 하나, 원단 하나 잘못 사오면 그마저도 다 내 돈으로 메워 넣어야 했다. 원단 시장에 가면 나는 순식간에 '빚쟁이'로 불리기도 했다. 내가 일하는 브랜드 실장은 거래업체들에 돈을 제때 입금해 주는 일이 없어서다.

지금 나는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사무직으로 일한다. 향후에도 패션 디자인 업종으로 다시 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한 때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꾸던 사무직 근로자 A씨)

#나는 10달째 한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다. 월 급여는 60만원. 평상시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근무한다. 우리나라에 안 그런 직장 있는가. 하지만 쇼가 밀어닥치는 성수기가 되면 최소 2~3시간의 의무야근이 추가된다. 이마저도 정규직으로만 갈 수 있다면 견딜 수 있다.


그런데 오늘 실장님이 나를 불러 인턴 기간을 3개월 더 연장하자고 했다. 3개월간은 월 100만원으로 급여를 올려주겠다면서 3개월 뒤에 자신이 정직원 전환여부에 대한 말을 먼저 꺼내지 않으면 그 다음날부터는 출근을 안 하면 된다고 한다. 인턴 기간은 연장됐지만 내 마음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3개월 뒤 정직원이 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디자이너 브랜드의 인턴사원 B씨)

#나는 이 회사에 피팅 인턴으로 들어왔다. 피팅 인턴은 월 300만원의 피팅 모델 섭외비를 아끼기 위해 디자이너를 뽑으면서 피팅 모델의 체격 조건을 요구하는 것이다. 신입 디자이너로 들어가려면 55 사이즈 체격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겨우 면접이 통과돼 들어간 회사는 2주 동안 일을 시키다가 어깨가 옷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통보했다. 사전에 내가 다른 곳을 알아볼 시간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물론 근로계약서는 쓴 적도 없고 한 달 약속된 급여는 80만원이었다.

나는 디자인을 배우고 싶었던 건데 왜 모델 체격까지 요구받아야 하는 걸까? 피팅에 대한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나는 이번 해고 이후 체형교정 수술까지 알아봤다. 디자이너가 되기 이전에 모델이 되지 않으면 일자리는 없다.

같은 과를 나온 다른 친구들의 회사생활도 똑같다. 사장 딸의 유치원 숙제까지 해주며 1년 반을 인턴으로 버틴 끝에 겨우 월 급여 130만 원을 받는 정직원이 된 친구, 야근수당은 물론 주말도 없어서 시장조사 하라는 전화가 오면 주말에 자다가도 백화점으로 뛰어가야 하는 친구. 예술가는 배고픈 거라지만 내 생활도 없는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 (그래도 패션업계 일자리를 계속 찾고 있다는 구직자 C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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