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詩를 찍는 시인들…"열린참여의 기회, 현대시 가교역"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4.11.01 05:32

[인터뷰]'디카시' 전도사 최광임시인…"이미지와 날 것의 표현으로 누구나 가능"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 사진 한 장에 이호준 시인의 짧막한 시 한 편이 걸린다. ‘먼 길 떠난 길안댁 비탈밭에 묻고오니/우물가 늙은 감나무 늦은 조등 켜놓았다/붉은 눈물 그렁그렁 내달았다/그동안 혼자 산게 아니었구나’(‘홍시’)

디지털 카메라에 입힌 시 한편에 감흥을 얻은 또다른 시인이 해설을 단다. ‘이별은 늘 막막하다. 준비한 이별이든 갑작스레 찾아온 이별이든 황망하기 그지없고 막막하기 그지없다.~’

머니투데이에 매주 연재되고 있는 ‘최광임 시인이 읽어주는 디카시’의 일부 내용이다. 시인이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이 사진이 불러오는 시상을 글로 풀어내는 형식이 디카시(디지털카메라+시)다. 최광임 시인은 머니투데이 연재에서 좋은 디카시 작품을 골라 해설을 덧붙여 소개한다.

디카시는 2004년 창신대학 이상옥(시인) 교수가 한국문학도서관에 디카시 작품 ‘고성가도’를 연재하면서 시작됐다. 이 교수로부터 출발한 디카시는 최 시인의 열정을 타고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이 교수와 같은 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디카시 운동을 펼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카메라로 사물을 찍고 그것에서 오는 날개념을 표현해달라고 시인들에게 부탁하면 재미삼아 써주세요. 물론 저도 찍고 쓰지요.”

◇ "시는 시인만 쓴다는 생각에서 '예술과 기술 영역 분리말자' 명징하게 누구나"

최 시인은 ‘디카詩’라는 잡지의 주간이기도 하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시가 흐르는 서울’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야외에서 디카시 낭독회를 열었고, 작년부터는 교보문고 등과 함께 1년에 4번 ‘광화문 목요낭독공감-디카시 낭독회’도 개최하고 있다.

디카시가 열풍으로 번지게 된 데에는 ‘열린 참여’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시는 사실 어렵죠. 개인의 상상력을 문자화한 것이니, 독자들이 공감하지 못하면 시인의 상상력과 독자의 해석의 괴리가 커질 수밖에 없잖아요. 요즘은 더 힘든 것 같아요. 디카시는 이미지라는 영상에 시의 경제성을 살린 거예요. 정형시처럼 5행 안팎으로 내용을 압축하죠. 그래서 이미지 전달력이 빠르고 강력해요. 시의 기법을 쓰지 않고도 날 것 그대로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거든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디카시를 새로운 시의 한 장르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거세지고 있다. 최 시인은 “갈수록 디지털 매체의 속성과 가까워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기 어려웠다”며 “독자들과 멀어진 현대시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 시인도 처음엔 “시인이 시만 써야지”라는 입장을 견지한 보수적인 시인들처럼 고유의 시를 고수했다. 하지만 우연히 문단 모임에 들렀다 디카시 일에 참여하면서 그는 디카시의 진정한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머니투데이에 연재하기 전까지도 기계와 예술의 영역은 분리된 것이 아닐까 고민이 많았는데, 잘 만든 디카시 한 편은 명징한 이미지와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걸 연재하면서 절실히 느꼈어요. 시인이 되레 더 감동하는 경우도 많이 봤거든요. 주변엔 디카 동시집을 낸다는 작가도 생길 만큼요.”


최 시인이 정의하는 디카시는 창작 행위의 총체다. 카메라가 사물을 찍는 것에서부터 사물이 전하는 문자를 받아적는 것 자체가 창작 행위의 연속이라는 것. 경남 고성을 중심으로 일어난 지역 문화 운동으로 시작한 디카시는 이제 하나의 문학 장르로 자리잡았다. 지난 5월 고성에는 디카시연구소까지 개소됐다.

디카시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일까. “주로 찍는 대상물이 자연이에요. 그게 현재로선 최고의 장점이죠. ‘디카’로 자연을 담아내면서 지구 온난화 같은 환경 문제를 계속 상기시킬 수 있거든요.”

◇ 36세 늦깎이 등단… "시는 삶의 기억, 시와 따로 가지 않는 사람의 모습으로"

'디카시 전도사' 최광임 시인이 디카시(디지털카메라+시) 행사에서 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최 시인은 2002년 등단했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현모양처라는 어린 시절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아이들 양육에 긴 세월을 바쳤다. 결혼 생활 2년을 10년처럼 쓰며 악착같이 살았던 시간에서 ‘그’는 없었다. 어느 날, 작은 아이 등에 업고 큰 아이 손잡고 가다 우연히 마주친 연극 포스터 한 장에 화려했던 21세때 기억이 스쳤다.

당시 그는 ‘진주 개천예술제’에 출품한 연극으로 최우수연출상을 받았다. 자신의 능력을 숨기며 산 인생이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포스터 앞에서 그는 결심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은 글 뿐’이라고. 36세에 대전대 문예창작과에 다시 입학해 얼마 되지 않아 첫 시집을 냈다.

아픈 글이었다. 살아야했던 지난 시간을 좌절과 고통, 허기로 채워 읽는 이들조차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그는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도요새의 요리’를 냈다.

“시인은 자기 삶을 얘기할 수밖에 없잖아요. 제 시에는 비애들이 많지만 고통으로 점철된 첫 시집과 달리, 두 번째 시집에선 비애를 털고 일어나는 긍정의 시선을 투영했어요. 결국 삶은 자신이 소화해 내야하는 거잖아요.”

최 시인은 이 시집으로 1일 대전문학관에서 열리는 제17회 대전시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0년의 현모양처, 10년의 공백기. 빛을 보기위해 20년이 걸린 이유를 묻자, “그냥 묵묵히 살다보면 알아주는 사람이 있지 않겠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시는 삶의 기억이잖아요. 그래서 더욱 함부로 쓸 수 없었어요. 발표작이 적더라도 최대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써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시와 사람은 따로일 수 없는 것 같아요. 계속 시와 사람이 같을 수 있는 모습으로 살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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