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별 보며 출근하는 직장인 "집에서 아침 먹은 지가…."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 2014.10.30 06:28

[누가 우리의 아침과 저녁을 빼앗나](상)정규 근무시간보다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의 비애

편집자주 | 기업들의 암묵적인 이른 출근, 늦은 퇴근 관행으로 직장인들의 피로도가 상승하고 있다. 공식 출근시간과 달리 기업들이 운영하는 통근버스의 회사 도착시간이 출근 시간의 기준이 된 것이 이유다. 이른 출근에도 불구하고, 야근과 회식 등으로 퇴근도 늦어 직장인들은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려 생산성도 낮다. 직장인들은 어차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할 것으로 짐작해 근무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근무시간에 사적 업무를 보는 경우도 잦다. OECD 회원국 중 가장 오랜 시간을 회사에 있지만, 생산성은 하위에 머물고 있는 한국 직장인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른 새벽 회사로 출근하는 직장인들. 정작 업무는 보지 않고 잠을 청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사진=이미지비트
#서울 양재동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김현대 대리(가명)는 매일 통근버스를 이용한다. 회사 앞에 도착하는 시간은 새벽 6시 55분. 10대의 버스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외롭지는 않다. 사무실에 올라가니 통근버스도 타지 않는 직원들도 절반 이상 나와 있다. 정규 출근시간은 8시지만, 통근버스 도착시간에 맞춰 팀원들의 출근시간이 암묵적으로 조정됐다.

# 서울 서초동으로 출근하는 박삼성 과장(가명)은 아침 7시에 사무실에 도착해 팀장에게 '눈도장'을 찍고 밖으로 나선다. 사옥 근처 커피숍은 담배를 피우며 커피 마시는 직원들로 북적거린다.

박 과장은 "사내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하는 친구들도 일부 있지만, 이른 아침 출근하고 나면 힘이 쭉 빠져 커피 마시며 잠을 깨는 게 낫다"며 "꼭 처리할 업무가 없어도 아침 일찍 나와야 근태 평가에서 불이익을 면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근로자들의 출근시간이 점점 앞당겨지면서 피로도가 쌓이고 있다. 칼퇴근은커녕 '칼출근'도 꿈꾸지 못한다. 다른 동료들보다 늦게 나올 경우 근태가 불량한 사람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야근 못지않게 '새벽별 출근'이 근로시간을 늘리고, 근무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OECD 회원국 중 한국 근로자들의 일하는 시간은 연간 2163시간으로 OECD 회원국 중 멕시코(2237시간)에 이어 2위다. 연간 2000시간이 넘는 나라는 멕시코와 한국, 그리스, 칠레뿐이다. 한국인의 근로시간은 OECD 평균의 1.3배에 달하며 근로시간이 가장 적은 네덜란드의 1.6배 수준이다.

한국은 연간 근로시간에서 2007년까지 부동의 1위를 유지했다. 2000년에는 2512시간으로 멕시코(2311시간)와 큰 격차를 보였다. 2008년부터 2위로 떨어진 것은, 주5일 근무제와 함께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시간제 근로자가 늘어나고 실업률이 올랐기 때문이다.

OECD 국가 2012년 시간당 노동생산성(단위 USD). /자료=한국생산성본부
근로자 1인당 노동생산성은 OECD 국가 중 그리 높지 못하다.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2012년 국내 취업자당 노동생산성은 6만5820달러로 OECD 34개국 중 24위,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0.4달러로 28위에 불과하다. 이는 OECD 평균 대비 80.1% 수준이다. 일본 대비 93.6%, 미국 대비 58.7%에 불과하다.

직장인들은 '비효율적인 근무시간'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회사원 A씨(33)는 "아침에 하는 일 없이 일찍 회사에 나간 뒤 아침 시간이 텅 빈다"며 "회사 곳곳의 테이블이며 의자마다 동료들이 시체처럼 널브러져 쪽잠을 자는데, 그게 다 근로시간으로 집계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회사원 B씨(40)는 "부장님이 아침 일찍 나오는데 부서원들이 부장님보다 늦게 출근하기는 굉장히 어렵다"며 "아침밥을 집에서 먹고 가족들과 인사하고 나온 지가 한참 된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근태관리의 척도가 '업무시간'보다는 '업무 집중도' 내지 '업무 성과'로 중심 이동해야한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9시 출근이 보편적인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전통적으로 출퇴근시간 등으로 근태를 체크해왔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정해진 시간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업무에 임하는지 여부"라며 "이른 시간에 출근하고 야근 밥 먹듯이 하는 사람보다는 '기본 출퇴근 시간'을 지키면서 업무량을 소화하는 사람이 더 회사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새 척도가 보편화되려면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전히 근태를 평가하는 부서별 책임자들이 출퇴근 시간을 중요한 척도로 삼는 '옛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원 C씨(30)는 "정상 출퇴근하면서 내 일 할 때는 근태가 나쁘다는 평이 많았는데, 새벽에 회사에 나와 자격증 공부하고 저녁에는 플래시게임하다 늦게 귀가하니 오히려 근태가 좋아졌다며 칭찬하는 상사가 많아졌다"며 "일도 안하면서 회사에 나와 시간 때우는 게 오히려 회사 입장에서는 자원 낭비일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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