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직장생활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들

머니투데이 박진영 기자 | 2014.10.26 10:00

[직딩블루스 시즌2 "들어라 ⊙⊙들아"]개인생활 무시..상사의 도넘는 지시·간섭들 참아야 해?

나는 대한민국의 흔한 '입사 3년차'다. 대기업 마케팅팀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입사 3년이 돼도 적응이 안되는 것들이 있다. 내가 이상한건지, 세상이 이상한건지 물어보고 싶어서 얘길 하게 됐다.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너무 충격적이었던 것이 팀 전체가 주말에 부장의 동창회 행사를 도우러 갔던 일이다. 동창들끼리 모여 등반하고 술도 마시는 자리였는데 그 행사 준비를 내가 다 했다. 심지어 업무 중에도 그 일 때문에 다른 일을 못할 정도로 이것저것 준비를 시켰다. 행사 당일 날은 물품도 지급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행사 요원으로 동분서주했다.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바로 '윗' 선배, '윗윗' 선배에게 물어봤다. 다들 엄청나게 열을 내면서 토로했다. 그렇지만 싫은 기색이 얼굴에 드러나는 나와는 달리 다들 부장 앞에서는 "주말에 등반도 하고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일부 선배는 "이런 거 잘해두면 앞으로 편하다"는 말까지 했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지난 3년간 온갖 심부름을 시켰다. 입사 7년차인 한 과장님은 매일 아침 개인 기사처럼, 자기 집 방향도 아닌데 부장을 태우고 출근을 한다. 때로는 자신의 아이가 다닐 학원을 알아봐달라, 때로는 본인 세탁물을 찾아 달라, 때로는 자신이 갱신한 여권을 찾아와 달라. 이제는 어느 정도 체념한 듯한 내가 무서울 정도다.

심부름도 심부름이지만, 갑자기 사람 발목을 잡는데도 귀재다. 업무시간을 넘치게 채우고 돌아가려 치면 "술 한잔 하고 가자"고 하는 게 부지기수다. 자주 그러는 건 둘째 치고 왜 미리 약속을 잡지 않고 당연한 권리처럼 내 시간을 빼앗는건지 물어보고 싶다.


개인적인 약속이나 볼 일이 있을 때도 많았건만 거절하면 당장 그 이튿날 엄청난 양의 일과, 수시로 들려오는 '비아냥' 때문에 차라리 가고 만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그래서 나는 주중에 친구 1명 만날 수 없는 '24시간 대기상태'로 지내고 있다.

우리 회사뿐만이 아니라 사회에 만연한 일이겠지만, 술을 한가득 부어주고 다 먹기를 강요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요즘은 쿨한척 "안마실 사람은 안마셔도 된다"고 하다가, 역시나 술이 한 순배 돌면 "왜 안마시냐"로 바뀐다. 솔직히 내 입을 벌리고, 내 의사와 상관없이 술을 콸콸 쏟아 붓는 가해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더 무서운 건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고 아연했던 일들을 내가 묵묵히 '수행'해 왔다는 것이고,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일부 선배들이 이를 '거쳐야 하는 일'로 수긍하고 있거나, 본인 스스로도 비판하는 한편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A부장에게 따져 묻고 싶은 것들은 위와 같은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내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한국에서 직장생활 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답이 안 나오는 질문을 3년째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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