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KB금융 회장 내정자도 23일 명동 본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전임 회장들과는 달랐다. 출근을 못한 게 아니라 안 했다. 국민은행 노조는 전날 윤 내정자 선출 직후 "KB가 관치의 외압에서 벗어난 역사적인 날"이라며 환영 성명을 냈다. 출근 저지는커녕 어서 오라고 두 손을 들어 문을 연 셈이다.
그러나 윤 내정자는 몸을 낮췄다. 내정자 신분으로 자연스러운 KB금융 회사 차원의 각종 의전도 마다했다. 당장 필요한 업무에 한해 실무를 맡은 임직원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정도였다. 여전히 공식 선임 절차를 남겨둔 만큼, 회장이 아닌 내정자로서 스스로 '선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오히려 KB금융 직원들이 기자들에게 '왜 출근하지 않았냐'며 윤 내정자의 소재를 묻기도 했다. 또 KB금융의 미래에 대해 한 마디라도 먼저 묻기 위해, 그의 자택과 현재 고문으로 재직 중인 법률사무소를 오가는 취재 경쟁도 벌어졌다.
그러나 윤 내정자는 선출 직후 기자들에게 전달한 메시지에서 "내정자 신분이므로 29일 이사회, 다음달 21일 주주총회가 마무리 될 때까지 인터뷰를 사양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기자들의 성격을 감안하면 그의 결심이 지켜지긴 어렵겠지만, '말을 아끼겠다'는 의지는 충분히 전해졌다.
이처럼 출근을 미루고 인터넷 뉴스에 그 흔한 사진 한 장도 나오지 않지만, KB금융 임직원들은 오히려 이런 회장 내정자를 반겼다. 국민은행 한 직원은 기자에게 "회장님 얼굴이 기사에 잘 안 나오는 게 오히려 회사는 잘 돌아간다는 증거"라고 농담을 건넸다. 기사 거리가 부족해지는 건 기자로서 난감한 일이지만, "옳거니"라며 맞장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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