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 식사, 문화를 나누는 예술의 공간

머니투데이 공영희 소설가 | 2014.10.17 07:08

[공영희의 러시아 이야기]<29>러시아 사람들의 식생활 2

상쾌한 가을바람은 연일 찬란한 햇빛과 더불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 바람과 이 햇빛만 바라보아도 건강해짐을 느낀다.

가을은 풍요의 계절임은 틀림없다. 눈이 오곡백과를 보며 호화로워진다. 잘 익은 과일과 채소 곡류들의 함성이 건강하고 활기차게 들리는 것 같다.

러시아에서의 가을도 마찬가지다. 가을이면 다차(별장)에서 농사지어 가지고 나온 농산물들이 동네 벼룩시장에 그득그득 쌓인다. 특히 러시아 사람들의 음식 사랑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보드카와 함께.

그들은 참으로 먹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라고 먹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이 직접 요리를 잘하고 아주 풍-성하게 먹을 것은 준비하는 것은 좀 다른 거 같다.

이제 저녁을 해결해 보자.

저녁 '우젠'. 요즈음 한국에서는 점심은 황제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이런 식생활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100세 건강을 위해서다. 그리고 얼마나 한국인의 영양상태가 좋아졌는지를 반영하고 있는 사태다. 건강을 위한 욕망으로 되도록 먹는 것을 절제하고 안 먹는 쪽으로 인도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저녁식사는 '황제처럼'이다. 러시아는 겨울이 길고 춥기 때문에 식문화도 날씨에 맞게 맞춰졌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 길거리에 사과 상자를 뒤집어 놓고 그 위에 소금으로 절인 돼지 비계 덩어리를 파는 것이 흔하게 눈에 띈다. 살점이라고는 없이 하얀 비계만 소금에 절여져 나오는 것을 보고 필자는 정말 깜짝 놀랐다. 아이고! 이런 걸 어떻게 먹어? 놀라움 그 자체였고 항상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필자가 어느 겨울 날, 모스크바 대학 기숙사에 놀러간 일이 있었는데 주인이 저녁을 먹자며 준비를 하는데 가만히 보니 문제의 그 하얀 비계 덩어리를 얇게 썰어 프라이팬에 구우면서 계란까지 후라이를 해서 같이 주었다. 기숙사 주인은 러시아 남자도 아닌 아르메니아 아가씨였는데 엄청 말라 어깨가 드러날 정도였다.

“리카, 이게 왠 일이야? 이걸 먹으라고?”
“후훗, 먹어봐, 맛이 있을걸. 자, 자, 어서 먹어. 먹으라구”


눈이 쾡한 아가씨가 빙긍빙글 웃으며 비위 좋게 자꾸 먹으란다. 리카도 그리 비위가 좋은 아가씨는 아닌 걸로 아는데....나는 그녀의 권유를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비계를 입안에 넣었다. 아뿔사! 생각보다 괜찮았다. 고소한 맛이었다. 으흥, 이 맛이었구나. 이거였다. 필자가 먹어본 음식의 반전이었다.

황제처럼 먹는 러시아 저녁 식사는 기름기 많은 고기 종류(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즐겨먹고 소고기보다 비싸다)와 채소 과일, 치즈도 이것저것, 샌드위치, 곡류로 만든 음료와 음식들로 가장 풍성하게 만들어 먹는다. 요리한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먹고 이야기 하는데 바친다. 필자는 이 점이 아주 맘에 들었다. 그러니까 손님으로 가거나 올 때는 아예 자정까지 있을 정도로 융숭하게 대접을 하고 받는다. 그들은 주로 뻴멘 이라는 만두와 사과 파이라든지 나폴레온 같은 빵 종류도 직접 집에서 구워 먹었는데 따듯하니까 더 맛이 있었다. 그래서 필자도 사과파이 만드는 법을 배워 러시아에 살 동안 사과파이 하나는 기가 막히게 구워 냈다.

처음 러시아에 갔을 때 러시아 사람들이 먹는 것을 보고 필자도 먹는 걸 좋아하지만 입이 떡 벌어졌다. 특히 손님을 초청할 때는 먹는 걸로 시작해 먹는 걸로 끝나는 격이었다. 저녁에는 주류도 저녁 음식과 함께 빠지지 않는다. 주로 보드카와 맥주, 여자들은 과일로 만든 달콤한 과일주도 많이 마셨다.

아무튼 저녁이 다 가도록 많이 먹고 거나하게 마시고 추위를 이겨내고 긴 밤을 보내는 것이다.

필자가 한국에 살면서 러시아 소설을 읽으면 부엌에서 뜨개질 하는 장면이라든지 혹독한 추위라든지 빵을 굽는다든지 보드카를 마신다든지 그런 묘사장면이 나오면 소설이니 그러려니 그렇게 넘겼다. 그런데 막상 러시아에 살고 보니 이 보든 소설 속의 장면들이 실제 생활이었고 실제 삶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저녁 식사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한 끼 식사가 아니라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가질 수 있는 예술의 공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애환이 담기고 그들 특유의 혼(魂)이 깃들어 있는 삶의 무대인 것을 필자는 깨닫게 되었다.


베스트 클릭

  1. 1 김호중 팬클럽 기부금 거절당했다…"곤혹스러워, 50만원 반환"
  2. 2 "술집 갔지만 술 안 마셨다"는 김호중… 김상혁·권상우·지나 '재조명'
  3. 3 '보물이 와르르' 서울 한복판서 감탄…400살 건물 뜯어보니[르포]
  4. 4 "한국에선 스킨 다음에 이거 바른대"…아마존서 불티난 '한국 세럼'
  5. 5 '말 많고 탈 많은' 김호중의 수상한 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