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팽겨쳐진 첫 시상식트로피…그래도 '미래만' 보고 달렸다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14.10.14 05:11

[문화강국 코리아/CJ의 20년 집념]②적자를 안고 달린 '희망의 시간들'-외환위기 이후 5000억 투자

편집자주 | ‘설탕’을 팔던 제일제당이 1995년 CJ로 개명하고 영상을 시작으로 ‘문화’사업에 뛰어든지 올해로 20년째다. 잘 나가던 제조업부문 1위 기업이 돈도 미래도 보이지 않던 문화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업계에선 “불가능한 도전”이라며 다들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 1년, 10년, 20년 세월을 버티면서 이룩한 문화사업은 대한민국의 가장 큰 미래를 담보하는 우량주로 발돋움했다. 2014년, 대한민국 곳곳 어디에서도 CJ가 만든 문화의 흔적을 비켜가기란 쉽지 않다. 때론 넘어져 깨지고, 때론 무모한 도전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오늘의 문화산업을 견인한 CJ. 이 그룹이 이제 제일 잘하는 사업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20년 문화 사업의 발자취를 시리즈 7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1. 신형관 엠넷 상무는 아직도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지상파 방송과 차별을 내세우며 1999년 영상음악회로 시작한 MKMF(Mnet KM 뮤직페스티벌). 첫 회 어설픈 무대 연출과 약한 인지도로 시상식은 그야말로 ‘바닥’을 쳤다. 당시 이 무대에 참여한 가수는 트로피도 버리고 자리를 떴을 정도였다. 신 상무는 버려진 트로피를 주으며 느꼈다. “대충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하지만 2005년 이 시상식은 국내에서 가장 큰 실내무대인 체조경기장으로 자리를 옮겨 지상파도 두려워하는 무대로 우뚝 섰다.

#2. 1990년대 국내 영화시장 규모가 1800억원 선으로 성장세가 또렷하자, 대기업의 영화 투자가 몰렸다. CJ도 기존 영화보다 3배 가까운 제작비를 쏟아부으며 의욕을 불태웠다. 그러나 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위기가 찾아왔다. CJ가 15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인샬라’는 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참패했고, 다른 대기업 역시 문화사업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98년 1월엔 SK가 영상사업을 포기했고, 99년엔 대우가 영상음반사업부를 해체했다. 같은 해 삼성영상사업단도 공식 해체 수순을 밟았다. 제일제당(CJ) 역시 97년 ‘억수탕’을 마지막으로 투자를 잠정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언론들은 “21세기를 앞두고 대기업들이 엘도라도를 버리고 떠났다”고 적었다. CJ 내부에서도 “돈되는 설탕이나 계속 만들지…”라는 자조섞인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나 최고경영진은 문화가 ‘미래산업’이라는 확신을 버리지 않고 99년 신년사를 통해 이렇게 공식선언했다. “제일제당은 2004년까지 영화제작, 극장, 케이블TV, 음반사업 등에 약 5000억원을 투자하며 종합엔터테인먼트그룹으로 비상할 것입니다.”


신규 사업을 할 때마다 CJ가 투자한 규모는 1000억원 이상이 들어갔지만, 영업이익은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영화부문 매출은 2000년 411억원이었지만, 영업이익은 36억원에 불과했다. 영화가 본격적인 산업으로 발돋움하던 2005년엔 1244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도 되레 39억원의 적자를 냈다.

CJ E&M 영화사업부문 투자1팀 이창현 부장은 “영화로 가장 많이 이익을 낸 것이 2009년 120억원”이라면서 “영화는 가장 돈을 못버는 사업 중 하나이지만, 수익보다 제작 노하우나 기술적 요소, 배급망 확대 등에 대한 미래 가능성을 염두해두고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2006년 케이블 채널 tvN 개국 이후, 방송 부문에 대한 매출은 현저히 높아졌다. 2005년 1100억원대의 매출은 2013년 7700억원대로 9년만에 7배나 성장했다. 영업이익도 2005년 77억원에서 2012년 446억원으로 8년새 6배 가량 늘었다. 다만 지난해 자체 제작물 콘텐츠와 인력에 투자비용이 늘어나면서 영업이익은 20억원에 그쳤다. 전체적으로 보면 영화와 방송은 1997년부터 17년간 297억원, 1025억원의 영업이익을 각각 거뒀다.

2009년 MKMF에서 MAMA로 이름을 바꾼 뒤, 엠넷의 시상식은 글로벌로 뻗어나갔다. /사진제공=CJ E&M

◇ 적자에도 ‘창조’와 ‘열정’ 새기며 새로운 사업에 몰두

CJ를 표현하는 단어 중 가장 많이 쓰이는 문구는 ‘창조’와 ‘열정’이다. CJ E&M의 한 관계자는 이 단어에 대해 “창조라는 게 없던 걸 만드는 작업인데, 실제 우리 사업의 대부분이 그렇게 시작했다”며 “없는 분야를 새로 창조하고, 연관이 없는 사업을 끼워맞춰 보기 좋게 만드는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설명했다.

MKMF가 2005년 정상의 시상식에 서며 안착할 때, 새로운 열정의 엔진이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글로벌 도시로 자리를 옮겨 K-POP 문화 시장을 확대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관계자들은 놀랐다. 이제 국내에서 온전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 안전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모험을 하자는 제안은 껄끄럽고도 불안했던 것.

2009년 MKMF는 MAMA(엠넷아시안뮤직어워드)로 개명하고 그해 중국, 일본, 홍콩 등 아시아 각국에 생방송 중계를 시작했고, 2010년 처음으로 해외(마카오)로 나가 글로벌 시상식으로서의 위상을 갖췄다. 신형관 상무는 “해외 진출때부터 집단 광기처럼 일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일한 덕분인지 2011년부터 해외 어디를 가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일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신 상무는 2011년 싱가포르 시상식 무대를 마치고나서 현지 아이가 한국어로 “여기와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한국 문화의 위대함을 처음 느꼈다고 했다.


◇ 배급→투자, 재방송→제작…우수한 콘텐츠로 세계 경쟁력 확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영화 사업에 대한 투자는 한마디로 ‘도전의 연속’이었다. 영화를 사업의 이익 수단으로 보기보다 한국 문화의 대표 상품으로 전세계에 전파하는 목표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처음엔 배급위주로 외화를 들여왔지만, 나중엔 우수한 한국 영화에 대한 투자로 방향을 틀었다.

‘문화사업의 마인드 확립’과 ‘제작자에게 철저한 독립권 부여’라는 두 가지 테마로 진행된 영화 투자는 예술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실적을 거뒀다. 그렇게 투자한 ‘해피엔드’는 99년 30만 관객, ‘공동경비구역 JSA’는 250만 관객을 각각 동원하며 최고의 기록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창현 영화사업부문 부장은 “글로벌 합작 영화 ‘설국열차’의 경우 400억원 이상 제작비가 들어가는 최대 규모의 블록버스터였는데, 리스크가 커 처음엔 고민이 많았다”면서 “하지만 ‘이 영화 망가져도 의미있는 작품’이란 생각에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2006년 케이블 채널 tvN이 출범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모두 “망한다”고 얘기했다. 케이블 채널의 특성상, 재방송과 외화로 채워지던 빈약한 콘텐츠의 재탕이 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 당시 엠넷에서 일하던 PD가 tvN으로 발령날 땐 ‘물먹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2006년 개국한 케이블 채널 tvN은 자체 제작 프로그램으로 다른 채널과 차별화를 내세웠다. 이 채널에 들어간 비용만 1500억원에 달했다. /사진제공=CJ E&M

tvN 개국은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선 경인TV 초기 자본금에 육박하는 1500억원이 들어갔고, 사업자가 직접 제작한 오리지널 종합 오락프로그램을 대거 편성하는 전략이 세워졌다. 신형관 상무는 “창조 콘텐츠에 대한 사업자의 의지가 전혀 없을 때, CJ는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며 “그건 문화사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뿌리깊게 박혀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CJ 내부에서는 “식품, 생활용품 등을 생산하며 몸에 밴 ‘아줌마 이미지’를 탈피하고 ‘젊고 창의적인 기업’으로 변신한 효과는 최소 200~300억원의 무형 가치가 있다”고 자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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