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 스캔들, 터졌다면 왜 유독 '줄기세포'인가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 2014.10.11 06:40

[팝콘사이언스-59]영화 '제보자'를 통해 본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건 파문

편집자주 | 영화나 TV 속에는 숨겨진 과학원리가 많다. 제작 자체에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는 것은 물론 스토리 전개에도 과학이 뒷받침돼야한다. 한번쯤은 '저 기술이 진짜 가능해'라는 질문을 해본 경험이 있을터. 영화·TV속 과학기술은 현실에서 실제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상용화는 돼있나. 영화·TV에 숨어있는 과학이야기. 국내외 과학기술 관련 연구동향과 시사점을 함께 확인해보자.

영화 제보자의 한 장면/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특정 스캔들을 영화 소재로 잡으면 관객동원 측면에선 일단 본전은 뽑는다. 하지만 양날의 검이다. 자칫 잘못된 해석이나 연출가의 주관이 깊숙하게 개입될 경우, 평단이나 사건 주인공의 '숨은 지지자'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을 수 있어서다. 특히 그 일로 좌절과 분노를 안게 된 피해자들에겐 상처가 미처 아물기도 전에 다시 그 상황을 떠올리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2005년 일어난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파문은 충무로 감독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탐을 낼 만 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10년이 흘렀다.

"줄기세포는 없다"는 제보자의 말 한 마디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던 희대의 논문 사기극이 임순례 감독의 감각적인 눈과 손을 통해 스크린에 옮겨졌다. 영화 '제보자'는 우리나라를 흔들어 놓았던 줄기세포 조작스캔들의 실체를 파헤친다. '진실이냐 국익이냐'라는 딜레마를 집중 조명했다.

개봉 전 터진 오보카타 하루코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박사팀의 유도만능줄기세포(STAP세포) 사건 역시 익명의 제보와 내부 고발로 밝혀진 올해 과학계 최대 스캔들로 비춰지면서 이 영화에 대한 관심도는 한층 더 증가됐다.

2일 개봉 후 일주일이 지난 관객들의 반응은 "민감한 소재를 거부감 없이 잘 풀었다"는 의견이 많은 편이다.

자신의 필모그래피 사상 첫 언론인 역할에 도전한 박해일의 연기도 연일 관객동원의 키로 작용하며 연일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과연 누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까"라는 반응일색이다.

임 감독은 당시 그 진실을 폭로한 한 공중파 시사프로그램 PD 윤민철(박해일)씨의 시각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간다.

임 감독은 "우리 사회의 진실을 파헤치는 한 언론인의 집요한 투쟁과 이를 지원하고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감독은 줄기세포 스캔들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실제 사건과는 차이가 있다고 선을 긋는다. 제작사는 영화가 실제 사건과는 다른 허구라고 설명했다.

작품에서 임 감독은 과거 사건을 직접적으로 떠올리지 않도록 하면서, 각 등장인물들에 대한 인간적인 접근을 통해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간다. 그렇게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길을 걸어간다. 임 감독 나름의 다른 방식으로 풀어간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자체는 과거와 같은 지점에 놓여져 있다.

임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의 핵심 인물 몇 명을 인터뷰했지만, 황 박사는 만나지 못했다.

영화 제보자의 한 장면/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가장 큰 윤리적 논란 부른 '황 박사 사건 내막'

우선 이 영화를 보기에 앞서 10년전 사건을 잘 모르는 중·고교 학생 관객들을 위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지난 2004년, 서울대 소속이던 황우석 박사는 귀위있는 한 국제 과학저널에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했다'는 논문을 실었다. 황 박사는 이어 또 다른 논문을 통해 같은 방법으로 11개 줄기세포주를 추출했다고 전했다. 그렇게 황 박사는 유명과학자가 됐고, 그의 연구는 전 세계 뜨거운 관심대상이 됐다.

2005년 11월, 황 박사가 실험실 내에서 난자 기증자를 모집했고, 금전적인 보상도 했다는 내용이 한 공중파 TV 시사 프로그램에 방영되자 황 박사 연구에 제동이 걸렸다. 황 박사는 그때까지 기증자들이 자발적으로 난자를 제공했다고 주장해 왔었다. 난자 기증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장기 매매에 필적한 행위이다. 국내에선 법에 따라 난자 매매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대 어디선가 이 시사 프로그램 제작진들이 황 박사 실험실의 핵심 증인이 증언을 하도록 협박했다는 언론보도가 흘러나왔다. 방송은 즉각 연기됐다. 이 프로그램에는 조작된 줄기세포 사진 사용을 포함해 황 박사의 데이터가 모두 날조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황 박사 줄기세포 연구에 희망과 기대를 걸었던 지지자들이 MBC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광고주들은 광고 거래를 중단했다.

시사 프로그램의 후속 보도는 2006년 1월 공중파를 탔다. 황 박사의 외부 연구 파트너가 인간배아 줄기세포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힌 이후였다.

이 사태의 실제 내부 고발자인 류영준 씨는 올해 1월 네이처지와의 인터뷰에서 황 박사의 지지자들이 위협해 6개월 동안 도피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황 박사는 현재 자신의 지지자들과 정부가 지원하는 서울 소재 한 연구소에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그는 최근까지 매머드(신생대 제4기의 플라이스토세 후기에 서식하고 최종 빙기에 절멸한 코끼리)를 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줄기세포가 뭐길래

황 박사에 이어 최근 오보카타 하루코 박사팀 사건에 이르기까지 왜 유독 줄기세포(Stem Cell)와 관련된 가짜 논문들이 많은 것일까.

줄기세포가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알면 그 이유를 대번에 알 수 있다.

넘어져 무릎에 상처를 입어도 몇 일 놓아 두면 처음처럼 회복된다. 줄기세포 덕분이다. 줄기세포는 일종의 '세포 팩토리(factory·공장)' 역할을 한다.

하지만 모든 장기가 이런 줄기세포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뇌, 심장근육, 척수 등은 한번 파괴되면 다친 무릎처럼 재생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가정해보자. 손상된 장기에 의료진이 인위적으로 줄기세포를 넣어준다면 어떻게 될까?

다친 무릎이 회복되듯 뇌, 심장근육, 척수는 모두 처음 상태로 재생될 수 있다. 우리몸의 총 210개에 달하는 기관·장기를 손상없는 최초의 상태로 다시 되돌려 놓을 수 있다. 이는 즉슨 암과 당뇨, 치매 등 모든 질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과학자들이 줄기세포에 열광하는 이유이다.

줄기세포는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수정란이 처음으로 분열할 때 형성되는 '만능 줄기세포' △만능 줄기세포들이 계속 분열해 만들어지는 '배아줄기세포' △성숙한 조직과 기관 속에 들어 있는 다기능 '성체줄기세포' 등이다.

황 박사 조작 파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배아줄기세포는 비교적 분리 추출하기가 쉬우면서, 시험관내에서 오랜 기간 동안 미분화 상태로 유지가 가능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불임시술 기술이 발달하고, 생명공학에 대한 규제가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덕에 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선 세계적인 연구수준을 확보하고 있다.

성체줄기세포는 환자 자신의 세포를 시험관에서 배양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생명윤리문제에서 자유롭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우리 생활 주변에선 성체줄기세포를 활용한 치료법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산부인과 접수창구에 가면 아기의 태반·탯줄을 많게는 75년간 보관해주는 민간 제대혈(탯줄 혈액)은행 광고 전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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