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칼은 부러지고 화살도 떨어진 순간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 2014.10.10 10:30

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65>

올해 노벨 물리학상발표를 접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일본이 또 한 번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함으로써 일본 과학계의 저력을 입증했다든가 세 명의 수상자 가운데 한 명인 나카무라 슈지가 지방대 출신에 지방 중소기업에 다녔으며 청색 LED(발광다이오드) 발명의 대가로 회사로부터 거액의 보상금을 받아냈다는 점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지만 사실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과학 분야의 노벨상은 통상 학문적 발견에 주어져왔는데 올해 물리학상은 이미 상용화된 제품 기술에 돌아갔다는 점이 더 주목할 만하다. 그래서 문득 이 말이 떠올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칼은 부러지고 화살도 떨어진 순간 비로소 최후의 전기가 마련된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다.

새로운 기술의 발명과 그 기술을 응용한 최초의 제품 상용화까지는 숱한 고비와 난관을 통과해야 한다.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기업들에게 이런 어려움은 엄청난 위험을 수반하지만 잘만 극복하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LED의 개발 과정이 딱 그랬다.

알다시피 LED는 에디슨이 발명해 100년 넘게 쓰여온 백열전구를 빠르게 대체해가고 있는 제2의 빛이다. 이 ‘빛의 혁명’의 마지막 퍼즐이 바로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명한 청색 LED다. 그러니까 청색 LED에 앞서 적색과 녹색 LED가 먼저 나왔다는 얘기다.

적색 LED는 청색 LED가 세상에 나오기 30년 전인 1962년에 발명됐고 녹색 LED는 1969년에 처음 나왔다. 적색 LED를 발명한 회사는 제너럴 일렉트릭이었고 녹색 LED는 몬산토가 개발했다. 두 회사가 어떤 곳인가? 하나는 에디슨의 필라멘트 백열전구를 처음 생산한 회사고, 또 하나는 세계 굴지의 화학회사다. 그런데 두 회사 다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도에 멈춰버렸다. 반도체 발광소자의 가능성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개발 초기 막대한 연구비 지출에 비해 매출이 지지부진하자 결국 LED 사업을 접어버렸다.

그런데 이들이 철수할 무렵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4개 주요 섬 가운데 가장 작은 시코쿠에 있는, 전 직원이라고 해봐야 200명에 불과한 니치아화학이 LED 개발에 착수했다. 니치아는 형광등에 쓰이는 형광물질을 생산하는 기업이었는데, 1979년 4월 회사에 입사한 나카무라 슈지가 LED 개발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전혀 없었다. 나카무라는 10년간 계속해서 실패했다. 그로 인해 월급도 오르지 않았고 승진도 뒤처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1989년 4월 마지막으로 시도한 그의 청색 LED 개발작업은 마침내 1992년 9월 성공한다. 청색 LED가 처음 빛을 발하자 나카무라는 수명을 테스트하기 위해 청색 LED를 켜놓은 채 퇴근했는데, 꼬박 밤을 새운 뒤 다음날 아침 연구소에 나가 보니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청색 LED가 아니더라도 이런 극적인 순간을 경험해본 연구원이나 기업인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의 기쁨과 감격의 크기는 그때까지 얼마나 많이 실패했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가에 달려 있다. 아무도 대신 아파하지 않고 누구도 대신 땀을 흘려주지 않는다. 밤을 새워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순전히 자기 혼자의 몫이다.

그런데 나카무라 슈지가 노벨상 수상 직후 일본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깜짝 발언을 했다. 일본의 연구원들은 불쌍한 샐러리맨으로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대단히 가치 있고 보람 있는 것이다.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좋아서 열정을 쏟는다. 개발에 성공한 순간 맛보게 될 그 극적인 희열 때문에 말이다.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적색 LED를 개발한 닉 홀로니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뤄낸 업적 가운데 정말로 훌륭한 것은 그 어느 하나도 빨리 만들어지지 않았다. 정말 어려웠고 무척 복잡했다. 오랫동안 연구해야 했고, 오랫동안 배워야 했으며, 오랫동안 일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이 만들어진다.” 음미해볼 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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