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전략'에 43兆 투자… '헛물'만 킨 해외자원개발

머니투데이 세종=유영호 기자 | 2014.10.06 05:32

[에너지·자원개발, 길을 찾다-①] MB정부 마구잡이 투자로 천문학적 손실… '나몰라라' 朴정부도 위기 초래

편집자주 | 대한민국은 에너지·자원 극빈국이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자원의 97%를 해외에서 수입하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자 세계 5위의 산업강국이라는 '위명'도 에너지·자원 얘기만 나오면 초라해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에너지·자원의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 과제다. 이에 머니투데이는 대한민국 에너지·자원의 현실을 냉정히 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한다.

"에너지·자원개발은 단순히 돈만 쏟아 부어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에너지·자원개발 전략은 시작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내부에서 성공을 기대한 사실이 더 놀랍다."

카자흐스탄의 한 육상광구 개발현장에서 만난 글로벌 석유·가스 메이저기업의 고위 관계자가 한국의 해외 에너지·자원 개발 전략을 꼬집은 말이다. 우리 정부가 에너지·자원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며 자화자찬을 하고 있을 때 정작 해외에서 우리를 '이상한 나라'라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던 셈이다.

냉정하고 정확한 현실 인식 없이 밀어붙인 해외 에너지·자원 전략은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돼 버렸고 고스란히 국민 혈세의 낭비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자주개발률 할당까지… '실패를 위한 전략' = 5일 국회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공기업이 해외 에너지·자원개발에 투자한 규모는 약 43조원이다. 1977년 첫 해외 에너지·자원개발을 시작한 이후의 총 투자액인 약 57조원의 75%에 해당하는 규모다.

말 그대로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부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성과는커녕 막대한 부실로 손실액만도 벌써 5000억원에 육박한다. 이런 결과는 '규모'에 집착한 밀어붙이기식 에너지·자원개발 전략의 실패 탓으로 분석된다.

이명박 정부는 국내로 수입되는 전체 에너지·자원 중 국내 기업이 확보한 자원 양을 의미하는 '자주개발률'을 도입해 주요 지표로 활용했다. 2020년까지 35% 이상으로 올리는 것을 목표로 강도 높은 정책 드라이브를 걸었다.

특히 임기 중인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국가자주개발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기업별 자주개발률까지 할당했다. 부여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예산 등에서 큰 불이익을 주겠다는 엄포도 함께였다.

공기업들은 연단위로 부여된 자주개발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수합병(M&A)과 생산광구 매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에너지·자원개발은 ‘탐사→평가→개발→생산’의 순서를 거친다. 탐사 및 평가에만 3~5년여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한 프로젝트가 결실을 내는대 적어도 10년 이상이 걸린다. 단기간에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이미 개발이 완료되거나 개발이 임박한 광구를 프리미엄을 얹어주고 사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이다.

해외 에너지·자원 기업들은 이런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었고 프리미엄 가격은 계속 올라갔다. 에너지·자원 공기업 관계자는 “매입할 우리가 찾아가 '제발 팔아달라'고 사정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며 “국내 공기업끼리 경쟁해 프리미엄이 더 올라가는 말도 안 되는 상황도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부작용은 예정돼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국제 에너지·자원 가격이 고공행진을 거듭할 때 인수한 자산은 국제 에너지·자원 가격이 안정되면서 평가손실로 돌아왔다. 달라는 대로 줬던 프리미엄은 손해를 기하급수적으로 키웠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본격화된 에너지·자원 공기업 구조조정과 맞물려 해외 자산의 헐값 매각까지 이뤄지면서 손실이 더 커지는 양상이다. 정부는 제값 받고 팔겠다지만 이미 매각 계획이 모두 공개된 상황에서 제값 받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핵심 에너지·자원 공기업 사장을 지냈던 한 인사는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며 “사실상 '정부의 실패'인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책임의 화살을 공기업에만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기된 에너지·자원개발… 또 다른 암흑기 '잉태' = 더 큰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대규모 부실 문제를 모두 지난 정부의 책임으로 몰아붙이고 에너지·자원개발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의 해외 에너지·자원개발은 '과거 지우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겉으로는 '질적 성장'을 내세우지만 신규나 추가 투자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해외 에너지·자원개발 사실상 금기어나 마찬가지다. 에너지·자원 공기업 관계자는 "정말로 사업성이 좋은 해외 자산이 있어도 보고조차 할 수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실을 냉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9위의 번째 에너지 소비대국인 동시에 세계 5위의 에너지 수입대국이기도 한다. 에너지·자원의 97%를 해외에서 수입한다. 해외에서 에너지·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리 세계 5위 산업강국이라는 명성도 허울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 있어 에너지·자원 분야가 '경제'를 넘어 '국가 안보'의 영역에 위치해 있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자원개발의 단기성과에 조급증을 보이는 것도 문제지만 일부 사업이 잘못됐다고 해외 에너지·자원개발 전체를 중단하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리스크를 대부분을 감당하던 공기업의 투자 위축은 민간기업의 전반의 투자 위축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우 동아 교수는 "에너지·자원개발 사업이 보통 10년을 주기로 하는 점에서 지금 모든 신규·추가 투자를 중단한다면 5~10년 후에 위기가 올 수 있다"며 "특히 국제 에너지·자원 가격이 안정된 지금이 오히려 투자의 적기"라고 밝혔다

신현돈 인하대 교수는 "탐사 이후 자원개발에 성공하는 비율은 글로벌 메이저기업도 10%를 넘지 못한다"며 "자원개발에 시동을 걸었다가 연착륙하기도 전에 흔들면 성과를 낼 수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구조조정을 앞세워 해외 에너지·자원개발을 무조건 금기시하기보다는 중·장기적인 개발 전략의 기틀을 닦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정부에서 정부 목표에 맞춰 생산자산 중심으로 인수에 나서다보니 고비용 구조가 고착될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 정권에서 탐사 사업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형동 서울대 교수는 "사실 글로벌 에너지·자원개발 역사의 후발주자인 우리나라가 양적 확대를 통한 대형화로 글로벌 메이저들과 '키 맞추기에 나설' 정도는 됐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질적 성장의 방향은 맞지만 공기업 중심의 양적 확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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