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부 '경제활성화' 기조에서 소외된 건설산업

머니투데이 이복남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교수  | 2014.10.02 06:35
정부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유예는 물론 기업인 사면도 거론된다. 하지만 유독 건설업만 예외인 것 같다. 입찰담합에 대한 과징금이 1조원대를 넘길 만큼 과하다.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조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데 있다. 법을 어겼으면 처벌받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담합이 불법이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처벌에 대해선 강한 불만을 표시하는 현상의 배경과 원인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을 어겼으면 어긴 만큼 처벌해야 한다는 데 누구나 동의한다. 처벌의 목적은 기업이나 개인을 죽이자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처벌의 목적은 더 이상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목적이 분명함에도 국내 건설과 기업인들에게 가해지는 처벌은 기업과 기업인에게 퇴출명령으로 인식된다. 범법자를 처벌해야 하는 명분은 보이지만 목적이 보이지 않는다. 담합에 대한 4단계 처벌은 기업과 개인 모두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정도로 과하다.

지난해 건설업 순이익은 -0.4%로 역신장했다. 국내시장에서 번 이익금으로는 은행 대출이자도 감당하기 어렵다. 이윤이 없고 은행 대출이자도 지급하기 힘들면 기업은 당연히 비용절감 측면에서 인력을 감축한다.

가장의 일자리 상실은 당연히 가족의 생계에 치명적이다. 국내시장 침체는 물론 미래 일감이 예측되지 않는 상황에서 신규 인원 채용은 꿈도 꾸지 못한다. 당연히 건설공학과를 졸업하는 대졸자의 일자리가 없다.

건설업의 취업유발 효과는 전체 산업평균치를 웃돈다. 더군다나 고급기술자보다 서민층의 취업비중이 높다. 타 산업에 비해 생산유발 효과도 월등하다. 정부도 이런 사실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기업을 살려야 투자도 늘어나고 일자리도 만들어낼 수 있다. 한 손에는 경제활력소를 들고 또 다른 손에는 기업과 개인을 퇴출하는 검을 휘두르는 모순적 상황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

관행처럼 돼버린 건설공사 입찰담합은 근절돼야 마땅하다. 문제는 현행 거래제도로는 근절이 어렵다는 데 있다. 불법이 반복될 수 있는 환경이다. 담합을 관행처럼 인식하는 건설업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준법이 원칙임을 알고 있음에도 법과 제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법을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을 현재 보유한 현금이나 자산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업은 극소수다. 과징금에 이어 손해배상과 입찰제한, 그리고 개인처벌까지 이어지면 이를 감내할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최악의 경우 과징금을 내기 위해 은행 대출까지 받아야 한다.

입찰제한은 국내시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실낱같은 희망인 해외시장마저 막히게 된다. 국내시장에서 번 돈으로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까지 감당하지 못하는 게 한국 건설이 처한 현실이다.

해당 기업은 잠시 수명연장을 위한 링거액 주사라는 극단적인 처방으로 구조조정이란 너무나 뻔히 보이는 수순을 밟게 된다. 처벌의 목적이 이 같은 극단적인 사태를 유발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내 건설에 적용되는 공정거래법은 민간의 불공정거래만을 다룬다. 문제는 발주자나 국가제도의 불공정한 거래는 공정거래법의 범위 밖에 있다. 원인 제공자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처벌에 형평성이 보이지 않는다.

일부 시민단체는 아담 스미스의 말을 들어 동종업체는 만나기만 해도 담합이라고 주장한다. 국내 건설은 오랫동안 다양한 모임을 가져왔다. 광의로 해석한다면 법이 인정한 사업자단체 모임도 불법이 되는 셈이다.

처벌의 목적이 범법행위를 없애거나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면 처벌의 원인이 되는 제도 개선을 먼저 하는 것이 순서다.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기 전까지는 과도한 처벌은 유예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선진국인 영국도 건설업에 이 같은 방식을 적용한 사례가 있다. 경제살리기가 우선이라면 기업과 기업인의 기부터 살리는 게 첫 번째다. 경제살리기 명분을 살리는 실리가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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