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사회복지사…한 9급 공무원의 하루

머니투데이 김세관 기자 | 2014.09.30 06:05

[the300] [나는 '9급 공무원'이다 ④] 1인당 관리 가구만 1000세대…욕설·협박 다반사

[한 9급 사회복지사의 2013년 8월분 보수지급명세서(3호봉)]


수도권 한 구청에서 9급 사회복지직 공무원으로 일하는 장모씨(29·여). 오늘도 아침 7시30분 뜨기 싫은 눈을 억지로 떴다. 전날 새벽 퇴근으로 몸이 무거워서가 아니다. 동료들 사이에서도 기피 대상인 민원인 A씨를 또 만나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원래는 어제 A씨에 대한 복지수급 관련 확인 조사를 마무리해야 했다. 하지만 대낮부터 그는 만취한 상태였다. 혀가 꼬부라질 대로 꼬부라진 A씨와 대화를 진행할 수 없어 "내일 다시 올 테니 술 드시지 말고 계시라"고 당부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A씨가 기피대상이 된 진짜 이유는 현장 조사를 하러 온 동료 여직원을 성추행한 전력이 있어서다.

오전 9시가 못돼 사무실에 들어서니 업무 시간 전인데도 급여 관리부서 동료 B가 이미 전화기를 붙들고 씨름 중이다. 최근 일용소득이 있는 수급자 명단이 확보됐고 수급 기준을 넘긴 사람들에게 급여 중지를 통보한 후폭풍이다.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다 보니 생계가 걸린 복지 수당 중지 선언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항의전화가 오는 것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욕설은 기본이고, 협박도 다반사다. 법을 바꿀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원칙이 그렇다"는 말만 되풀이 하게 된다. 생계가 걸린 민원인은 또 험한 소리를 한다. 무한반복이다.

직접 사무실로 찾아와 드러눕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럴 때 남자직원들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안심이 되지만, 장씨가 다니는 구청의 복지부서 30여명 직원 중 남자직원은 4명 뿐이다. 그나마 이들도 외근으로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민원인의 거친 항의가 시작되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다른 구청이나 동사무소에는 흉기를 들고 찾아오는 민원인도 있다지만 다행히 장씨는 아직 그런 경험까진 하지 않았다.

B씨가 힘겹게 전화 한 통을 끊는다. B씨는 오늘도 밤늦게까지 야근이 분명해 보인다. 낮에는 계속 이런 전화를 받아야 하고 밤이 돼서야 겨우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터다.

장씨도 하루 업무 정리를 하고 오전 10시에 나가기 싫은 외근을 나섰다. 공용차를 타고 가면 좋지만 이미 다른 선배가 타고 갔다. 버스를 타고 A씨의 집으로 어제와 똑같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복지대상 확인 조사는 항상 긴장된다. 대부분의 조사 대상자들이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 같은 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A씨는 오늘도 취해있다. 그래도 어제와 달리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빨리 조사를 끝내고 싶지만 이번 조사로 A씨의 복지 수급 여부가 결정되는 만큼 대충 할 수도 없다.


장씨가 맡은 수급자는 거의 1000세대에 이른다. 일주일에 10세대 정도를 방문한다. 방문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구의 재산 소득, 자녀들과의 관계, 생활 패턴 및 양식을 한 번 방문하고 파악해 수급여부까지 결정해야 한다.

술에 취한 A씨가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하지만 들어가지 않고 문을 연 채 현관에 걸터앉았다. 사회복지직 9급 공무원으로 2년 반 동안 근무하면서 악성 민원인에 대처하기 위해 터득한 C씨의 노하우다. 여차하면 집에서 나가야 한다. 대부분이 그렇지 않지만 여러 가지로 위험한 상황도 더러 경험하며 체득한 방식이다.

A씨의 인생역경을 듣다 보니 이미 오후다. 겨우 마무리를 한 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원래 오늘은 하루종일 상담내역을 정리했어야 했지만 계획과 달리 이미 한나절이 갔다.

이렇게 업무가 밀린다는 건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도 나와야 한다는 의미다. 다음 인사 땐 비교적 민원이 적은 과로 발령이 날 거란 희망을 품는다. 요즘은 모든 정책 사업이 복지와 연관돼 있어서 어느 부서든 사회복지직이 필요하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처음 공무원이 됐을 때만 해도 각오는 했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간간히 들려오는 사회복지직 공무원들의 자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믿었던 공무원연금마저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바뀐다는 소식도 최하급 공무원인 C씨를 힘들게 한다. 박봉과 열악한 처우에도 사회의 그늘을 보듬는다는 자부심과 퇴직 후 혜택을 생각하며 버텼는데 이제 이마저도 사라질지 모른다.

그래도 맡은 바 책임은 다 해야겠기에 사무실에 앉아 상담내역 정리에 들어갔다. 오늘은 12시까지만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C씨는 다시 서류 뭉치를 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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