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조선산업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1971년 배를 만든 경험이 전혀 없으면서 500원권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내보이며 영국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그리스에서 배를 수주했다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일화는 유명하다.
울산조선소를 완공하기도 전에 이미 수척의 배를 수주해놓은 용기는 세계 최고 기술력과 인력을 갖춘 조선업체의 탄생과 영광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용기보다 치밀한 사전 계산과 일하는 방식 개선이 더 중요해 보인다.
요즘 울산야드(조선소)는 과거의 무리한 수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전세계 조선소 순위를 매기는 기준이 되는 수주잔량(야드의 남은 일감)을 보면 현대중공업은 단연 세계 톱인데, 몇 년 전부터 해양플랜트는 물론 상선 수주에서도 저가 수주가 많았다는 업계의 관측이 있다. "굉장히 공격적으로 수주했다"는 지적은 저가수주가 많았다는 뜻이다.
1973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인 현대중공업을 구하려면 크게 2가지 과제를 해내야한다. 우선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 지난 2분기 현대중공업은 공사손실충당금 5000억원을 쌓느라 1조1037억원 영업손실을 냈다.
공사손실충당금을 쌓은 것은 미래에 이만큼 손실이 예상된다는 차원이지 이미 발생한 손실은 아니라는 측면에서, 향후 인력을 더 투입하는 등 방법으로 공정만회를 해야 한다.
또 장기적으로는 저가수주가 발생한 원인을 찾아 재발방지책을 시스템적으로 만들고 실천해야 한다. 눈앞의 수주에 급급해 저가로 후려친 부분에 대해 반성부터 해야하며, 이는 기존 영업방식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하나씩 뜯어고쳐야하는 이유다.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현대중공업은 최근 '캡틴'들을 다 바꿨다. 40년 '조선경영 베테랑' 최길선 조선·해양·플랜트 총괄회장을 지난달 다시 불러들였고, 이번 주에는 권오갑 전 현대오일뱅크 사장을 현대중공업 사장 겸 현대중공업그룹 기획실장으로 발령해 혹독한 경영진단을 시작했다.
정몽준 현대중공업그룹 대주주의 신임을 받고 있는 새 캡틴들이 보여줄 경영진단과 쇄신안에 조선업계 전체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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