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담뱃값 인상, 솔직히 밝혀라

머니투데이 오승주 산업2부 차장 | 2014.09.15 08:40

분명 '증세'인데 증세 아니라니…지금이라도 '증세'라고 떳떳히 밝히는 게 '정답'

편집자주 |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담배라는 게 참 묘하다. 끊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수차례 금연시도는 사흘을 넘지 못했다. 술은 한 때 냄새맡기가 싫어져 2개월 이상 입에 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안 마셔도 충분히 살 만 했다. 지금도 안 마시려고 들면 1년, 아니 평생 입에 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런데 담배는 의지나 자신감을 무력화한다. 눈을 뜨자마자 집 밖으로 나가 남들 시선을 피해 구석에서 한 대 물어야 하고, 수시로 니코틴을 요구하는 몸의 반응에 정신도 무릎을 꿇는다.

"허튼 소리 말고 금연하면 되지 않느냐"는 주위의 충고도 하늘하늘 퍼지는 연기와 특유의 담뱃내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몸에 해롭고, 가끔은 과다 흡연에 따른 적색경보가 몸에 울려도 손가락은 언제나 8.5㎝ 남짓한 담배가치를 향한다.

대학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배운 담배와의 인연도 20년을 훌쩍 넘었다. 담배를 입에 대면서도 다른 나라와 비교해 우리나라 담뱃값이 "참 싸다"고 생각해 왔다. 길거리 모퉁이에 수북이 쌓인 꽁초와 길을 걸으면서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기를 내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담뱃값을 왕창 올려 비흡연자에게 혜택을 돌려줄 필요가 있다는데도 동의한다.

이런 마당에 정부가 담뱃값을 갑당 2000원씩 올린단다. 평균 2500원인 담배가격은 4500원으로 무려 80%가 오른다. 그런데 명분이 희한하다. 담배 가격 인상은 '국민건강 증진에 목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뿐 아니라 정부 관계자 모두가 "정부는 '순수한 마음'으로 가격 인상 금연정책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의 건강을 고려해 가격인상을 통해 금연을 유도하겠다는 의미도 담겨있다고 곁들인다. 여기에 물가연동제를 적용해 향후 물가상승률에 따라 담배가격을 자동적으로 올린단다.

분명 세금을 올리는 '증세'인데, 증세가 아니라 국민 건강이 나빠지는 것이 안타까워 순수한 마음에서 담배가격을 올린다니…. 어리석은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된다. 수십년간 담배를 피웠는데 정부가 순수한 마음으로 내 건강에 관심을 가져준 적이 있었는 지 의문이 든다. 보건소에서 나눠주는 금연패치 외에 흡연자들에 대한 정부의 배려가 또 있었나.


아, 역시 한국어는 끝까지 읽어야 한다. 담배가격 인상에 대한 고관대작님들의 대국민 배려가 묻어나는 일성을 놓쳤다. 류근혁 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부수적으로 세수가 증가해 조성되는 금액은 '반드시' 흡연 예방 및 금연치료에 쓰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정부가 흡연자 금연치료를 위해 정기 병원검진도 받게 하고, 흡연자를 꼼꼼히 파악해 집집마다 공무원들이 돌아다니면서 패치도 나눠주고 담배를 끊을 때까지 밀접한 소통을 나누겠다는 뜻일게다. 여기에 금연예방이라는 말은 늦은 시각 아파트 놀이터에서 삼삼오오 몰려 담배를 피면서 위협감을 조성하는 흡연 청소년도 계도해서 깨끗이 사라지게 해 준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무리지어 아파트 놀이터 등에서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을 경찰에 신고해봤자 경험상 허사로 끝나는 일이 많다. 경찰도 출동해서는 몇마디 훈계하고 순찰차를 돌린다. 그러면 즉시 어린이놀이터는 청소년 흡연의 장으로 변한다.)

담뱃세 인상으로 한 해 새로 확보되는 세수가 2조8000억원. 서울시 한 해 예산의 10분의 1과 맞먹는 큰 돈인데, 증세가 아니라 국민 건강증진에 위해 쓰겠다니 잘 지켜봐야 겠다. 혹시라도 담배가격 인상으로 걷힌 세금이 공무원 회식비나 '세금먹는 하마'로 불리는 공무원 연금 보전 등에 사용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럴 자신 없으면 지금이라도 정부는 솔직해 지는 것이 낫다. 담뱃세 인상은 '증세'라고 떳떳히 밝히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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