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반올림, 피해자가족 배제는 정당한가

머니투데이 오동희 기자 | 2014.09.03 12:04

편집자주 |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누군가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국가나 사회는 그 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합의(계약)에 따라 성립된다. 홉스, 로크, 루소 등 자연법론 철학자들의 '사회계약론'이다.

구성원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가 국민의 신탁을 배반하고 자연권을 침해하게 되면 국민은 정부에 저항해 정부를 다시 구성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 사회계약론의 핵심이다. 보통 정부의 재구성은 선거 등으로 이루어진다.

비단 국가뿐만 아니라 작은 조직이나 단체도 마찬가지다. 그 단체의 최초 성립요건에 부합하지 않고, 일부 주도세력이 대다수 구성원의 이익과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할 때는 그 대표성이나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최근 삼성전자와 협상 중인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일명 반올림)도 이런 측면에서 대표성과 정당성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섭단에 참여한 피해자 가족 8명 중 6명이 반올림과의 이견으로 교섭단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반올림은 8명 중 6명이 빠져나간 교섭단에 반올림 활동가(사회운동가) 3명을 추가해 교섭단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 가족보다 더 많은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교섭단이 대표성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반올림이 피해자 가족의 대다수를 버렸거나, 혹은 피해자 가족 대다수로부터 버려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내홍은 반올림이라는 작은 사회를 구성할 때의 당초 목적성을 벗어난 지나친 정치성이나 당파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조직의 리더들이 정치적 이상주의에 몰입해 구성원들의 현실론적 필요성과 총의를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올림 측은 단체의 다음카페에서 "삼성측의 '8명 우선 보상안'이 교섭단을 분열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주장에는 삼성을 비난하는 것도 있지만, 피해자 가족 8명 중 6명이 '보상'에 눈이 어두워 반올림을 저버렸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내홍의 원인을 내부의 의사소통의 잘못에서 찾지 않고,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반올림의 패착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교섭단의 일원으로 마지막에까지 남아 있다가 여섯번째로 교섭단을 떠난 고 황민웅의 부인 정애정씨가 반올림 카페에 올린 기고 '나는 삼성과 교섭하는가? 반올림과 교섭하는가?'에는 반올림이 곱씹어볼 많은 주장이 담겨있다.

이 글에는 첫 교섭부터 반올림 활동가 및 일부 피해 가족들간에 이견이 있었음을 드러낸다. 기고를 빌리면 2013년 12월 18일 첫 본교섭에서 교섭의 주체를 두고 이미 이견이 제기됐다.

삼성 측은 교섭의 주체가 피해자이니 반올림이 교섭에 함께 하려면 피해자들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반올림은 활동가와 피해자가 함께 구성이 되어 있으니 위임은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고에서 정애정씨는 자신과 다른 가족들의 생각은 "피해자를 주체로 하고 반올림은 우리의 위임을 받고 교섭을 재개해서 우리가 작성한 요구안 달성에 전력하자. 주체가 누구인 것이 중요한가? 요구안 피력이 더 중요치 않은가?"라고 해 처음부터 반올림 활동가들과는 이견을 보였음을 밝혔다.

교섭주체의 위임 문제는 활동가들이 교섭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이 부분부터 활동가와 피해 가족간의 이견이 도출됐고 협상도 지연됐다.

제3의 중재기구와 관련해 논란이 중단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씨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에서 제안한 '제3의 중재기구' 설치와 마찬가지로 제3자(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를 두어 반올림과 삼성의 의견 차를 좁혀가자고 제안했으나, 이 또한 협상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을 우려한 반올림 내부로부터 묵살됐다.

정씨는 '교섭의 목표지점과 한계를 고려하자'는 것과 '시간과의 싸움도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반올림 요구안 달성이 중요한 것만큼 치료와 생계에 시달리고 있는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시간다툼도 생각 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많게는 7년, 적게는 5년까지 수년간 싸워 온 피해자들 에게 '수정 없는 반올림의 요구안'을 달성하기 위해 삼성이 들어 줄 때까지 싸우자고 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이야기라고 했다.

정씨에 앞서 반올림을 떠난 5명의 피해자 가족들도 "삼성안에 응하자는 것은 보상논의를 먼저 해야 기준을 세워서 다른 사람들도 빨리 보상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지 먼저 보상을 받겠다는 것은 아니다"고 의견을 냈으나 반올림 내 지도층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결국 결별했다.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반올림이라는 조직이 그 구성원들 공동의 뜻을 담아내지 못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일부 반올림의 활동가들은 아직도 그리스 시대 플라톤의 철인정치의 이상론에 빠져 있는 듯한 모습이라는 게 주변의 얘기다.

국가를 통치하는 것은 철학자들(활동가)이며, 이 철학자들이 우매한 국민의 정신을 개조하고 사회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함정에 빠진 모양새다.

8명 중 6명의 피해자 가족들이 반올림과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한 이유를 곰곰이 새겨봐야 한다. 정치적 이상론만으로 피해자 가족들의 행복을 담보할 수는 없다. 이상론과 현실론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끝으로 반올림은 최소한 수학적으로도 '반올림'(대표성을 담보하기 위한 50% 이상)의 정당성은 확보해야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 최근 내홍으로 볼 때 반올림의 활동가들은 이 교섭에서 교섭의 주체가 아니라 지원자로서 한발 물러나야 할 때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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