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억 중견기업 일궈낸 체육특기생...비결은 '잡초 같은 뒷심'

머니투데이 강경래 기자 | 2014.09.02 06:00

[강경래가 만난 CEO]무선통신장비 대표주자 케이엠더블유 김덕용 회장

김덕용 케이엠더블유 회장 / 사진제공=케이엠더블유

"58년 인생에서 최고의 기적은 고등학교에 합격한 일이다."

국내 무선통신 장비분야 대표주자인 케이엠더블유를 창업한 김덕용 회장은 학창시절 육상선수였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5년 동안 육상부에서 활동했다. 그는 특성화 학교인 인천공업중학교에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했다.

그는 공부가 싫었다. 반 석차는 늘 꼴찌에 가까웠다. 형편도 따라주질 않았다. 삼형제 중 장남인 그는 부모님과 다섯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았다. 점심시간 이후에는 육상부에서 운동만 했다. 공부를 피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중2 때 갑작스럽게 대수술을 받게 됐다. 창자가 썩어 들어가는 장 유착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복부에는 아직도 20㎝ 길이 수술자국이 남아있다. 수술 후 그는 운동선수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선택한 것이 공부. 그는 중3 여름 때부터 5개월 동안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채 공부에 매진했다. 그 결과, 인문계인 인천고에 진학할 수 있었다. 당시 중학교 160여 졸업생 가운데 유일하게 고교 진학을 이룬 사례였다.


뒤늦게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된 그는 고교 내내 전교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이후에도 학업에 전념했다. 각 대학에서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 한명에게 주어지는 '육영수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그는 어느덧 교수를 꿈꿨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다시 발목을 잡았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대우통신 연구소에 입사했다. 이후 삼성휴렛팩커드 등을 거치며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그는 1991년 케이엠더블유를 창업하며 사업가의 길에 접어들었다.

김 회장만의 '헝그리' 정신과 운동선수 출신의 승부근성 덕분에 회사는 꾸준히 성장, 2013년 기준 매출액 3179억원을 올린 중견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김 회장은 못다 이룬 학업에 대한 열정을 회사에서 실현한다. 그는 집무실을 연구소 바로 옆에 배치, 업무시간의 70% 이상을 연구진들과 보낸다.

김 회장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중견기업을 키워낸 원동력으로 '잡초 같은 뒷심'을 강조한다. "가난했던 덕(?)에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며, 스스로 행동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 기업인으로서 고독한 판단을 해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고독한 환경에 익숙해서 언제나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잡초 같은 뒷심'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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