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지렛대가 없는 야당과 양보할 만큼 했다는 여당은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청와대와 여당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면 "특별법과 민생법안을 분리 처리하자"고 답한다. 야당이 제시한 여야와 세월호 유족이 참여하는 '3자 협의체'도 거부했다.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할 만큼 했다는 분위기가 읽힌다. "대통령이 나설 일이 아니다"라며 뒷짐만 지고 있다.
정국은 올 스톱됐다. 8월 임시국회는 물론 9월 정기국회가 파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야당 내부에서 특별법과 민생법안을 분리 처리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25일 열린 의원 총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출구 없는 대치는 특별법을 놓고 유불리를 따지는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철저한 진상조사를 외치고 있는 야당은 이를 박 대통령과 여당 공격의 빌미로 삼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여당은 3권 분립이라는 헌법 정신에 반한다며 유족의 요구를 일축하고 있지만,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가 읽힌다. 청와대 역시 진상규명 과정에 정부의 문제가 드러날 것을 우려하고 있는 듯하다. 정치권 모두 유가족에게 가슴으로 다가가 '공감'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정치공백 상태가 계속될수록 박 대통령의 고심도 커질 수밖에 없다. 꺼져가는 경제회복의 불씨를 가까스로 되살렸고, 나아가 고강도 경제 활성화 대책을 실현하기 위해 갖가지 관련 법안을 제출했다. 국회를 통과해야만 효력이 극대화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수차례 조속한 법 통과를 요청했지만, 정작 꽉 막힌 정국의 물꼬를 트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여당 단독으로 법안 처리를 할 수도 없는 처지다.
이제 박 대통령이 나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가 여당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주말 열린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는 박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유가족들을 만나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16일 청와대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대표 17명과의 면담을 갖고 특별법 제정을 약속했고, 특히 "유가족 뜻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다시 만나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후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고, 또 다시 국론은 분열되고 있다.
물꼬는 박 대통령이 '유민아빠'는 물론 유가족을 만나는 것으로 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족과의 약속을 지키는 차원을 넘어서 국민에게 약속한 경제 활성화와 국가 혁신을 위해서도 이제 앞으로 발을 떼야 한다는 거다.
유가족이 요구하는 기소·수사권이 있는 특별법이 어려우면 그 이유를 진정성 있게 설득하고, 진상규명을 약속하며 불신을 해소시켜 줘야 한다. 여권은 박 대통령이 만나서 줄 카드가 없다고 우려하지만, 그럴수록 더 만나야 한다. 카드를 줄 수 있다면 만날 필요도 없다. 여야, 입법부가 풀면 된다. 대통령이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의 지혜와 용기, 결단을 보여줘야 할 때다. 유가족들의 마음을 이렇게 강퍅해지게 만든 건 여야 정치권, 그리고 박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대신 유가족들도 자신들의 주장 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여야 합의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때문에 국정이 마비된다면 국민들의 지원도 계속 얻기 어렵다. 일단 수용하고 문제가 있을 때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 놓는 방안도 강구해볼 수 있다.
어찌됐든 첫 단추를 낄 사람은 박 대통령이다. 25일 청와대에서 열릴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의 입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회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란 발언이 반복되면 정치·사회적 혼란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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