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산을 닮고 산은 사람을 닮은 우리 이야기

머니투데이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2014.08.23 05:40

[최보기의 책보기]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

읽기 전에는 책의 두께를 보고 의아했다. 산에 대해 무슨 할 말이 저리 많을까? 저리 많은 말을 할 만큼 산이 인문학적일까? 인문학이라 하니 지금까지 넘쳐났던 명산기행이나 등산로 안내는 아닌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조정래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태백산맥’을 읽다 보면 빨치산들이 역경의 행군 끝에 지리산에 당도하면 어머니 품속에 안긴 것 같은 감격에 겨워 울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왜 바다와 달리 산은 사람에게 어머니와 동격이자 신앙의 대상까지 된 것일까? 그 해답을 주는 책이기에 저리 두꺼웠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산을 넘어 아시아와 세계의 산들을 꺼꾸로 들어서 탈탈 털었다. 참고하고 인용한 동서양의 산에 관한 문헌들을 정리한 분량만도 20페이지에 달한다. 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역사, 시, 서, 화, 사진, 전설들을 망라한다. ‘인문적 산’의 백과사전이라 해도 될 것 같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평야가 아닌 태백산(지금의 묘향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는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서 시작되는 산과 인간의 합일의 스토리가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의 명산에까지 이른다.

배산임수(背山臨水), 산을 등지고 물을 앞세우는 것은 도시나 마을의 터를 잡는 풍수지리의 제 1법칙이다. 그렇게 잡은 터의 산세가 그래도 부족하다 싶으면 우리 조상들은 그 허세를 보완하는 비보(裨補)를 했다. 대구 제일중학교 운동장에는 ‘연귀산 돌거북’이 있다. 대구의 진산인 연귀산이 낮고 작은 것을 보강하기 위해 돌거북을 묻고 머리를 마을로 향하게 해 산 기운을 불러들였다. 거창의 무릉리 마을 앞에 있는 세 그루의 소나무는 마을 뒷산의 좌청룡 지세를 보강하기 위해 일부러 심은 조산(造山)이다. 돌탑, 장승, 인공산과 숲 등의 형태로 남아있는 조산의 스토리는 전국의 마을에 널려 있었다.


경기도 연천군 원당리의 주마산 맞은편에는 ‘말뚝봉’이 있다. 재물이 말을 타고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이름이다. 봉황산이 있는 지역에는 어김없이 대나무 숲과 오동나무 숲이 있다. 봉황이 대나무를 먹고 오동나무에 깃들기 때문이다. 강원도 동해의 진산 두타(dhuta)산은 산스크리트어로 불도수행의 뜻이다. 부처와 산이 한 몸인 것이다.

백두산, 태백산, 소백산, 백운산, 계룡산, 청룡산, 용문산, 용두산 등 우리나라에 유독 백산과 용산이 많은 이유는 왜일까? 이 글이 끝나면 하늘의 복을 타고난 동천복지(洞天福地) 속리산 우복동에 가서 살고 싶다.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 최원석 지음. 한길사 펴냄. 640쪽. 2만 원.

thebex@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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